'짝퉁'그림 파문으로 미술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인기 작가의 가짜 그림이 실제 제작·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이중섭 박수근 작품 2600여점에 대한 검찰의 재감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는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유망 투자 아이템으로 주목받으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던 미술품 시장의 위축이 우려된다.

<2월26일자 본지 참조>

◆가짜 작품 유통 실태=경찰에 따르면 국내 최대 미술품 감정기구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소장 엄중구)조차도 구별하기 힘든 가짜 그림들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그동안 도상봉 화백의 딸 문희씨(서양화가) 등 유명 화가들이 제기한 가짜 그림 유통 문제가 사실로 확인된 것. 실제로 천경자의 가짜 그림 8점을 비롯해 박수근 위작 2점,이중섭 위작 2점,변시지 위작 '해녀',이만익 위작 19점 등 108점(진품시가 1011억원)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

윤중식씨는 "지난 1년 동안 내 그림을 구입한 컬렉터들이 작품을 들고 와 감정을 의뢰한 게 수십건이었는데 이들 작품의 80% 이상이 가짜였고 지난달 K옥션 경매에 낙찰된 '풍경'마저도 내 작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화랑협회 산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서 1982년부터 2001년까지 감정한 2525점 중 30%가 가짜였다.

위작 비율이 높은 작가로는 이중섭(75%),박수근(36.6%),김환기(23.5%),장욱진(20.5%) 순이었다.

◆위작 수법=위작범들은 인기 화가의 도록에 실린 그림을 모사하거나 화랑에 전시된 작품을 빌려 그리는 수법(일명 새끼치기)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전시회 팸플릿 등의 그림을 실제 크기로 확대 복사한 뒤 그 위에 얇은 습자지를 대고 밑그림을 똑같이 베껴 캔버스에 원본과 같은 밑그림을 그려 넣었다.

또다른 위작범 3명은 작가의 도록 등을 참고하면서 각각 자신있는 부분을 나눠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모 화랑에서 훔쳐온 변시지의 '해녀'와 이만익의 '가족-달꽃''가족-만남' 등은 직접 진품을 보면서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그리는 '새끼치기'도 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이만익씨는 경찰에서 "잘 그렸네.미대 정도는 나온 실력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외국산 물감을 쓰기 때문에 구분이 된다"고 말했다.

◆미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번 사태는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미술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컬렉터들이 작품 구입을 미루거나 꺼리게 되고 이는 시장위축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술계는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 2600여점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어 파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컬렉터 김미령씨(56)는 "위작 가능성이 있는 국내 작품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해외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며 "오리지널 그림 거래를 위해서는 작가의 서명과 공인된 미술품감정서·작품 족보·진품보증서 등이 반드시 필요한데 국내 미술시장에 이 같은 감정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미술관가는길의 복기성 대표는 "일부 인기 작가의 작품값이 치솟자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위작이 번지고 있는 것 같다"며 "미술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