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 <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나는 내 아이를 조기 유학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

요즘 내 주변을 보면 초중생 자녀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교육 환경이 뛰어난 외국의 학교에서 어린 시절에 좋은 교육을 받으면 소위 주입식 교육에 찌든 아버지보다 훨씬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자식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더욱이 많은 한국 학생들이 공부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기회의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기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곳이 아닌가?

그러나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닌 다음에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정확히 노력한 만큼 벌고 산다면 행복할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잠을 적게 자면서 회사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 순서로 부장 승진을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부장 자리를 꿈꾸는 많은 경쟁자들이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회사에 남아 일할 것이고 만일 당신이 가장 열심히 일하여 부장에 승진된다고 하더라도 가정 생활이나 자신의 건강이 이미 정상이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어떤 경우이든 인간이 행복한 경우를 보면 노력한 것보다 불공평하게 훨씬 더 얻는 경우들이다. 남들은 야근할 때 자신은 정시에 퇴근하지만, 부모님이 워낙 좋은 머리를 주셔서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부장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행복한 경우인 것이다.

미국에 조기 유학간 한국의 아이들은 미국의 아이들과 정말 공평한 경쟁을 해야 한다. 아니 사실 외국인이므로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약간 유리한 상황에서 경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아파서 병원에 가면 미국에서는 공평하게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 교수인 아빠가 전화해서 좀 빨리 치료 받도록 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 한두 분 계실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졸업 후에는 또 지속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워낙 공평한 사회이므로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해서 별로 인생이 다른 사람보다 쉬워지는 것도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좀 고생해서 소위 명문 대학에 들어가면 좀 인생이 쉬워진다.

인생에 있어 편안함과 행복은 결국 지나친 경쟁에서 조금 보호되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불공평하게 유리한 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이공계를 회피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어떤 이공계 출신이 핸드폰을 만들면 그 핸드폰은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의 핸드폰과 공평한 처지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반면 한국 의사 선생님이나 한국 변호사는 미국, 유럽, 일본의 의사나 변호사가 어떤 서비스를 어떤 가격에 고객에게 지원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외국의 의사나 변호사와의 경쟁에서 보호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공계는 공평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이므로 평생토록 딱 노력한 만큼만 벌 수 있는 피곤한 분야인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과연 어떤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할지 결정하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 이 때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이 어떤 방향으로 노력하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공평하게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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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 칼럼니스트 프로필 및 저서소개 ]

한순구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정책연구대학원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가 2002년부터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평범한 한국의 아빠로서 경제학 이외에도 역사서나 과학서적 등을 즐겨 읽고, 좋아하는 영화는 대사를 외울 때까지 여러 번 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2004년 메이저리그 월드 챔피언인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렬한 팬으로서 자신의 수업에 들어오는 모든 학생들을 레드삭스의 공식 팬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적인 소재에 경제 원리를 적용시켜 경제학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소개한 <경제학 비타민/한국경제신문>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