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구 3억명이 넘는 미국시장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뚫었다.

하지만 시장이 넓어졌다고 해서 선진국으로 곧장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방으로 경쟁이 격화되고,기업들이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얻게 되는 과실은 매우 크지만 패배할 확률 역시 예전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FTA 대책은 국내 기업들이 개방된 시장 환경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한·미 FTA 체결은 한국 경제가 선진화하는 공격적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한국의 경제 시스템 전체를 글로벌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FTA에서 서비스업이 빠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미 FTA에 대해 "빅딜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상품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 원천의 하나인 '서비스' 분야가 한·미 FTA에서 통째로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서비스 분야는 시장개방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기 때문에 고비용·비효율의 국내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은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서비스,환경 측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2006년 전 세계 61개국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의 순위는 매우 낮았다.

교육은 2005년 40위에서 42위로,제도적 여건은 30위에서 46위로,기업관련법은 34위에서 51위로 급락했다.

이 같은 환경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타결 직후 발표한 담화에서 "법률 회계 등 고급 서비스시장에 대해 좀 더 과감한 개방을 하라고 지시했는데 교육 의료시장의 경우 전혀 개방되지 않았고,문화산업도 크게 열리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득권 깨고 개혁해야

시장개방은 서비스업을 포함한 국내 경제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예컨대 과도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선진국형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의 반대로 사장될 뻔했던 동의명령제가 한·미 FTA를 통해 부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의명령제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받는 기업이 소비자 피해구제 방안과 시장질서 회복 방안 등을 제시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위법성 판단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는 제도로 세계 주요국들이 의욕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형벌이 부과될 수 있는 사건을 경쟁당국과 기업이 협의해서 종결하는 것은 법 체계상 맞지 않는다"는 법무부의 반대에 부딪혀 국내에서는 자체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이면에는 '사법권을 내어줄 수 없다'는 '밥그릇 지키기'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우체국보험과 농협공제 등 이른바 유사보험사들은 일반 보험상품과 같은 상품을 팔고 있지만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았다.

감독권이 정보통신부 농림부 등 해당 정부기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 FTA에서 이들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을 명문화했다.

내부 개혁으로 이뤄내지 못한 것들을 성사시켰다.

반면 독점적인 지위를 활용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책은행 개혁은 이번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은 '국책은행이 정부 보증으로 조달된 재원으로 민간 금융회사와 경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제도개혁을 요구했지만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료 출신들이 국책은행 행장으로 주로 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다행히 정부는 미국 측 압력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 '국책은행 기능 개편 방안을 통해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FTA의 제도 개선 효과가 국책은행 분야에서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셈이다.


◆숙제…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고부가가치 산업인 지식서비스업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경쟁력이 낙후돼 있다.

한·미 FTA라는 '외부 충격'으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부 구상이 있었지만 관련 업계의 반발이 거센 데다 미국 측도 요구의 강도가 낮아 시장개방을 포기했다.

법률과 회계서비스는 이미 개방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에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고,방송 등 문화산업 분야도 경쟁을 두려워한 관련 업계의 반발로 크게 열리지 못했다.

'철밥통 중에 철밥통'으로 꼽히는 교육시장은 지난해 적자액이 34억달러에 달했는 데도 전혀 개방되지 않았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이번에 서비스 분야는 법률시장이나 조금 열고 말았지만 점차 개방폭을 넓혀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며 "미래의 성장동력을 서비스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