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조치로 결합재무제표가 의무화됐던 1999년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회계학 교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연결재무제표면 충분할 텐데 새로운 회계기준이 나왔으니 대기업그룹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느냐"며 코멘트를 구했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씩 웃는 것이었다. "기업들이 엄살을 떠는 거예요. 금방 적응들 할 겁니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변화는 큰 충격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변화이기는 엊그제 타결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따져야 하지만 우리 기업들로서는 빨리 'FTA 경영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얘기다.

특히 경영자들이 중요하다. 기업 경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까지 이 새로운 환경에서 기회를 잡으려고 눈을 부릅떠야 한다. 이런 큰 변화는 이제까지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변곡점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시초부터 민감한 변화의 줄기를 살피고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글로벌 마인드를 갖는 일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글로벌 마인드란 세계인으로서 생각하고 세계인을 상대로 사업을 도모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번 FTA 타결로 세계 최대 시장을 '내수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만큼 생각의 폭을 달리해야 한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때 그 기획 규모부터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더 이상 틈새시장,전문시장에서 만족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목표를 항상 매스마켓(mass market)을 장악하는 데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벌 마인드에서 또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기존 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이제 피부색깔이 다르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의 소중한 고객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영문 브로셔나 영문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도 다시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회사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경영자가 앞장서야 한다. 현지 시장을 제대로 알려면 현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외국인재를 채용할 수 있어야 하고,원자재나 기술을 세계에서 조달하는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 마인드도 가져야 할 것이다.

글로벌 마인드가 경영자들에게 새롭게 부과되는 과제라면 버려야 할 것도 있다. 바로 '제조업 마인드'다. 부품사 등 상당수 제조업에 기회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 더해 서비스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고부가가치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제조업의 앞과 뒤,예를 들면 원자재조달 정보 제공에서 사후서비스까지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지 않으면 저부가가치 제조업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변화는 가능성의 싸움이지만 미리미리 준비해야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니 회사의 인재들을 모아놓고 '한·미 FTA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100가지'같은 제목으로 브레인스토밍을 당장에 할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경영자 스스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부터 끊어야 한다. 세계 1등의 꿈을 갖고 있는 기업가들에겐 이제 큰 무대가 열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