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의 한성익씨 "수술비 고작 1만원 받지만 행복 넘치니 남는 장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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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서 단돈 1만원에 안면장애 수술을 해 주는 별종 의사 한성익씨(48). 그가 하는 수술은 '얼짱'을 위한 미용 성형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신체를 복원해 주는 재건 성형이다.
두 살 때 안구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오른쪽 눈을 다 들어낸 미혼 여성,한 쪽 귀가 없는 아이,입천장이 뚫리고 한 쪽 눈마저 없어 물을 마시면 눈으로 나오는 남성….선천적인 장애나 불의의 사고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의 고객이다.
이처럼 안면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은 서른 명에 한 명 꼴이라고 한다.
남들 눈을 의식해 바깥 출입을 꺼리기 때문에 노출이 덜 될 뿐이라는 얘기다.
그가 수술비로 1만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귀 수술을 세 번 받은 소녀가 3차 수술을 앞두고 '공짜 수술은 비굴한 마음이 들어 싫다'며 행방을 감춘 사건 이후 환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수술비를 그렇게 책정했다.
이후로 '사건'은 재발하지 않았고 환자와 의사의 유대감도 커졌다.
그는 "1만원 수술로 억만금의 행복을 얻으니,남아도 엄청 남는 장사"라고 능청을 부리지만 사실 자신도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부정맥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환자였다.
그래서 겸손하게 사는 법을 남보다 빨리 터득했다.
지난해 심장 수술을 받을 때 수술실 천장에 난 구멍을 세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뒤 그는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수술대에 직접 누워 본 그가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병원 천장에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들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는 최근 펴낸 책 '만원의 수술,만원의 행복'(이지북)에서 자신의 얘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안면장애 치료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도쿄의·치과대학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던 1982년.얼굴 수술을 처음 지켜본 그는 집도를 맡았던 교수에게 "나도 이 길을 가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얼굴 수술은 독일이 최강인데 공부가 만만찮고 의사 면허도 두 개나 필요하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귀국한 뒤 '사고'를 쳤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의대 공부를 하기 위해 조선대로 갔고 그 다음엔 독일로 날아가 함부르크대에서 의학 박사와 치의학 박사 학위를 다 취득했다.
그는 1만원 수술을 시작하기 전까지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지만 이제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공부하며' 산다고 말한다.
환자들에게 수술비 1만원 외에 '도움을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꼭 하겠다'는 각서를 받는 것도 그가 '아름다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두 살 때 안구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오른쪽 눈을 다 들어낸 미혼 여성,한 쪽 귀가 없는 아이,입천장이 뚫리고 한 쪽 눈마저 없어 물을 마시면 눈으로 나오는 남성….선천적인 장애나 불의의 사고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의 고객이다.
이처럼 안면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은 서른 명에 한 명 꼴이라고 한다.
남들 눈을 의식해 바깥 출입을 꺼리기 때문에 노출이 덜 될 뿐이라는 얘기다.
그가 수술비로 1만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귀 수술을 세 번 받은 소녀가 3차 수술을 앞두고 '공짜 수술은 비굴한 마음이 들어 싫다'며 행방을 감춘 사건 이후 환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수술비를 그렇게 책정했다.
이후로 '사건'은 재발하지 않았고 환자와 의사의 유대감도 커졌다.
그는 "1만원 수술로 억만금의 행복을 얻으니,남아도 엄청 남는 장사"라고 능청을 부리지만 사실 자신도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부정맥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환자였다.
그래서 겸손하게 사는 법을 남보다 빨리 터득했다.
지난해 심장 수술을 받을 때 수술실 천장에 난 구멍을 세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뒤 그는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수술대에 직접 누워 본 그가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병원 천장에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들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는 최근 펴낸 책 '만원의 수술,만원의 행복'(이지북)에서 자신의 얘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안면장애 치료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도쿄의·치과대학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던 1982년.얼굴 수술을 처음 지켜본 그는 집도를 맡았던 교수에게 "나도 이 길을 가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얼굴 수술은 독일이 최강인데 공부가 만만찮고 의사 면허도 두 개나 필요하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귀국한 뒤 '사고'를 쳤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의대 공부를 하기 위해 조선대로 갔고 그 다음엔 독일로 날아가 함부르크대에서 의학 박사와 치의학 박사 학위를 다 취득했다.
그는 1만원 수술을 시작하기 전까지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지만 이제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공부하며' 산다고 말한다.
환자들에게 수술비 1만원 외에 '도움을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꼭 하겠다'는 각서를 받는 것도 그가 '아름다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