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절묘한 시기에 '사의 표명'이라는 묘수를 뒀다.

드러나 있는 사유는 국민연금법안 부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 장관의 노림수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복지부 장관으로서 최대 현안인 연금법안 처리문제도 풀고,연금법안 개혁에 반대한 열린우리당 탈당파에 정치적 부담을 주고,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원조 열린우리당' 세력의 고민도 해소하고,자신의 정치적 진로도 보기좋게 개척하는 등 돌 하나로 적어도 네 마리의 새는 잡을 수 있는 기묘한 수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노 대통령과의 6일 만찬에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사의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권은 유 장관이 계산한 복잡한 계산에 말려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긴장하는 이유다.

우선 연금법안 개혁에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물론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졌던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에도 법안처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배증시켰다.

이들이 4월 임시국회에서 또 다시 부결시킬 경우 "장관까지 물러나게 했으면서도 개인 감정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국회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판을 바꿔놓았다.

정치 복귀의 명분도 '아름답게' 챙겼다.

대권도전이나 친노세력 결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금개혁'과 '국민 이익'을 위해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여권 내 반대파들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유 장관의 사의표명은 여권 내 친노세력의 재결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목소리를 낮춰왔던 친노그룹이 유 장관의 복귀를 계기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친노그룹으로는 구 참정연 소속 의원들과 개혁당 출신,과거 기간당원 등이 주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정치권으로부터 '왕따'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는 노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면서 열린우리당 간판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범여권 통합파'와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4년 연임제 개헌 여부,참여정부 개혁정책에 대한 평가 등 정치·정책적 사안뿐 아니라 당해체 여부와 통합추진 방법 등을 둘러싼 노선투쟁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대선주자 구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금은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반노(反盧) 성향을 띠는 주자들밖에 없다.

하지만 유 장관이 대선주자로 나서면 두 가지 색깔로 대립구도가 형성된다.

노 대통령이 마음에 두고 있는 차기 대선후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의 친노주자인 만큼 노 대통령 지지층의 지원을 손쉽게 넘겨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사의가 반려된다 하더라도 국민연금 부결에 대한 책임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에 넘어가게 돼 있다.

유 장관으로선 손해볼 게 없는 게임인 셈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