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무책임한 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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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열을 받을 만도 했다.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워크숍 얘기다.
장관들의 '과장된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은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이 명태 어민의 피해 전망을 보고하자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태 어민이 몇 명이냐고 묻자,김 장관이 700명이라고 답했고,700명을 갖고 어떻게 '어업 피해가 엄청나다'고 보고할 수 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더 파고들었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장관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한·미 FTA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이 700명이라고 밝힌 원양 명태어업 종사자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 선원이다.
더욱이 30%의 명태 관세가 15년 뒤에 철폐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유예기간이 10년이나 된다.
협정이 발효돼도 미국산 명태에는 10년간 30%의 관세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얘기다.
350명의 명태 어민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느낄 수 있는 시점은 빨라야 2018년 이후인 셈이다.
주무 장관이 이런 조건들을 모두 접어둔 채 "큰 일 났습니다"만을 외쳤다는 사실에 노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날 워크숍은 한·미 FTA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취약 업종은 이렇게 구조조정하고,산업의 체질은 저렇게 개선해 FTA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보고가 쏟아졌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책에도 정신을 못차린 일부 장관들은 회의의 성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야단을 맞았다며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기가 찰 일이다.
사실 많은 장관들이 FTA 협상에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대통령을 도와 피해계층을 설득하고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기보다는 오히려 협상에 지장을 주는 발언을 일삼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책임을 떠안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출신 장관들은 더하다.
지지계층이 즉각 등을 돌릴텐데 선뜻 FTA타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천정배 의원이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행적에서 이들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관을 할 때는 가만있다가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니까 돗자리를 깔고 단식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이젠 한명숙 전 국무총리마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면 국회 비준을 거부할 수 있다"는 유보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대외개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국민을 설득하던 게 엊그제인데 말이다.
장관들의 태도가 이러니 국민들의 반응이 좋을리 없다.
한국경제신문이 중앙리서치와 함께 1000명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협상 타결은 잘한 일'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1%에 불과했다.
한·미 FTA를 보는 국민들의 눈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협상에서 미국 이익이 더 많이 반영됐다는 응답이 52.1%나 됐다는 점이다.
정부 홍보는 빵점이나 다름없다.
FTA 타결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장관들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으스대고 있고,대통령에게 한 방 먹은 장관들은 이제야 홍보에 나선다고 분주하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메가플랜은 뒷전으로 미뤄진 채,또 다시 퍼주기식 피해대책만 쏟아지지는 않을는지.협상 타결 이후가 더 걱정스런 이유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워크숍 얘기다.
장관들의 '과장된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은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이 명태 어민의 피해 전망을 보고하자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태 어민이 몇 명이냐고 묻자,김 장관이 700명이라고 답했고,700명을 갖고 어떻게 '어업 피해가 엄청나다'고 보고할 수 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더 파고들었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장관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한·미 FTA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이 700명이라고 밝힌 원양 명태어업 종사자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 선원이다.
더욱이 30%의 명태 관세가 15년 뒤에 철폐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유예기간이 10년이나 된다.
협정이 발효돼도 미국산 명태에는 10년간 30%의 관세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얘기다.
350명의 명태 어민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느낄 수 있는 시점은 빨라야 2018년 이후인 셈이다.
주무 장관이 이런 조건들을 모두 접어둔 채 "큰 일 났습니다"만을 외쳤다는 사실에 노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날 워크숍은 한·미 FTA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취약 업종은 이렇게 구조조정하고,산업의 체질은 저렇게 개선해 FTA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보고가 쏟아졌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책에도 정신을 못차린 일부 장관들은 회의의 성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야단을 맞았다며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기가 찰 일이다.
사실 많은 장관들이 FTA 협상에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대통령을 도와 피해계층을 설득하고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기보다는 오히려 협상에 지장을 주는 발언을 일삼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책임을 떠안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출신 장관들은 더하다.
지지계층이 즉각 등을 돌릴텐데 선뜻 FTA타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천정배 의원이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행적에서 이들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관을 할 때는 가만있다가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니까 돗자리를 깔고 단식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이젠 한명숙 전 국무총리마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면 국회 비준을 거부할 수 있다"는 유보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대외개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국민을 설득하던 게 엊그제인데 말이다.
장관들의 태도가 이러니 국민들의 반응이 좋을리 없다.
한국경제신문이 중앙리서치와 함께 1000명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협상 타결은 잘한 일'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1%에 불과했다.
한·미 FTA를 보는 국민들의 눈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협상에서 미국 이익이 더 많이 반영됐다는 응답이 52.1%나 됐다는 점이다.
정부 홍보는 빵점이나 다름없다.
FTA 타결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장관들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으스대고 있고,대통령에게 한 방 먹은 장관들은 이제야 홍보에 나선다고 분주하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메가플랜은 뒷전으로 미뤄진 채,또 다시 퍼주기식 피해대책만 쏟아지지는 않을는지.협상 타결 이후가 더 걱정스런 이유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