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협상은 끝나고 공치사만 남았는지…. 모처럼 찬성표가 많아졌으니 대통령에서부터 실무진까지 박수를 받고도 싶을 테다. 이쯤 해서 협상의 전체적인 구도가 기만과 허위로 가득차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쌀 시장을 지켜냈다"는 자화자찬이나 쇠고기 뼛조각으로 국제망신을 당하고도 개방일자를 놓고 여전히 더듬수를 놓고 있는 것도 그렇다.

30개월령 미만의 '뼈를 제외한 살코기'를 수입하는 나라가 70여개국에 이르는데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뼛조각을 문제 삼아 전량 반송한 나라가 또 있었는지부터가 궁금하다. 소뼈라면 갈비나 등뼈 꼬리뼈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살코기를 발라내면서 튀어 들어간 밀리미터 단위의 뼛조각을 문제 삼은 것부터가 실은 억지였다. 그것도 800여 상자를 이잡듯 뒤져 겨우 몇 건을 발견해냈다는 실로 악의적인 조사였다. X-레이로도 나오지 않자 상자를 풀어헤쳐 육안 검사까지 동원했으니 미리부터 '살코기'라는 단어에 함정을 팠다고 볼밖에. 결국 한국은 믿지 못할 상대가 되고 말았고 서면 약속 따위의 모욕을 받아 싼 나라가 됐다. 나중에 똑같은 보복을 당하면 무엇이라고 항변할 것인지….

국민들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지경이 된 것만으로도 농림부 장관은 곧바로 해임돼야 마땅하다. 소득 2만달러 국민이 쇠고기는커녕 수입 삼겹살로 겨우 단백질을 보충하게 됐는데 이대로 가면 이밥에 쇠고깃국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단체 급식에 어떤 저질 쌀이 나오고 있는지,그리고 한국에서 쌀 종자는 도대체 칼로스를 따라잡을 만큼 개량되고 있기나 한 것인지 감감 무소식이다.

입만 열면 미국 소를 저주하는 광우병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일본이 전국을 뒤져 수백만마리의 소를 전수검사했던 것은 국제적 화제였지만 한국에는 광우병이 과연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도 불명이다. 광우병은 동물성 사료 때문에 발병한다고 돼 있지만 그것에 대한 정부 주장부터가 우선 믿을 수 없다. 유럽 측 통계에는 분명 한국에 동물성 사료를 수출했다고 돼 있는 것이 왜 한국 통계에는 없다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조차 나온 적이 없다. 국회 농림수산위원회 역시 어물쩍 덮고 지나갔다. 더구나 한국은 사료의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만일 축산 농가로부터 광우병 발생 보고가 없었다는 것이 청정지역이라는 주장의 주된 근거였다면 이는 우스개가 되고 만다.

쌀 수입 문제도 다를 것이 없다. 한국은 소비량의 4%를 중국을 위시한 외국으로부터 매년 '의무수입'하고 있다. 일본이 이미 관세화를 통해 개방했고 대만 역시 시장을 열었다. 국제 가격을 무력화시키는 높은 관세로 개방하는 것과 낮은 특혜 관세로 의무수입하는 것 중 무엇이 실제 수입량을 줄이게 되는지 정밀한 계산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수입을 거의 안할 수도 있는 것을 소비량의 8%까지(2014년) 의무수입하는 얼빠진 짓을 계속하고 있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장래 개방 시점에 적용하게 될 관세율은 지금도 매년 착실히 내려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쌀은 막았다"는 주장은 쌀 문제를 2014년의 문제로 미루어 놓는 책임 회피일 뿐이요,쌀을 성역화하는 또 다른 선언에 불과하다.

대책 운운하면서 한국 농업의 장래를 걱정하는 듯한 근엄한 표정은 더욱 가관이다. 생산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농지 가격은 이 정부들어 주택지의 무려 두 배에 달하는 상승률을 보여왔던 터다. 2005년에 주거용 토지가 4.97% 오를 때 논값은 9.1%나 올랐고 작년에도 주거용이 5.87% 오를 때 농지는 6.52%나 올랐다. 이렇게 비싼 땅에 농사를 짓자는 것 자체가 억지다. 참여정부가 균형발전 운운하며 전국의 농지 가격을 제멋대로 올려 놓았던 바로 그때 한국 농업은 전국 각지에서 거듭 사망증명서를 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농업 경쟁력을 걱정하는 듯한 얼굴을 부디 꾸미지 말라.

농림부 등 정부 부처들이 때는 이때다며 피해를 부풀리고 있는 것은 예산이 곧 문전옥답이요 권력인 줄 아는 공무원들이 참여정부 들어 지극한 보호를 받아왔던 당연한 귀결이고…. 이래저래 국민들만 또 바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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