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소매 경계가 모호해진다
동대문 패션타운의 도매 의류 전문몰 '유어스'는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였던 영업시간을 오후 3시까지 연장한다고 9일 밝혔다. 강동석 유어스 홍보팀장은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소매상들이 주로 낮에 물건을 떼러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벽 장사' 위주였던 기존의 도매 상권 관례를 깬 유어스의 영업시간 연장은 동대문 내 18개 도매 쇼핑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업계에선 '낮 영업=소매 겸업'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제일평화가 오후 2시까지로 영업 시간을 연장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낱개 판매를 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낮에 쇼핑객들이 찾아오면 판매하지 않을 도매상은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뉴존 등 다른 도매 쇼핑몰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들의 쇼핑이 끝날 무렵,일반 소비자들에게 주변의 소매 쇼핑몰보다 싼 값에 상품을 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제품과 농산물 분야에서는 이미 도·소매시장 통합이 확산된 상태다. 최병학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홍보팀장은 "나물류 등 경매가 부적합한 농산물은 소매상과 일반 소비자를 구분하지 않고 팔고 있다"며 "가락동의 경우 전체 판매량의 30%가 소매를 통해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도수 롯데마트 야채팀 과장은 "지방의 공영 도매시장은 정도가 더 심해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의 대형화,온라인 유통 발달이 원인
이 같은 현상을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유통 대기업들이 직거래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기존 도매상들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소매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예컨대 신세계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은 농산물의 경우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직접 가져오는 비율을 70% 안팎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다. 수산물은 80%를 웃돈다는 게 이마트 측 설명이다.
인터넷 쇼핑의 영향도 크다. 박주범 G마켓 홍보팀장은 "온라인 쇼핑 시장에선 가격과 품질만으로 경쟁할 뿐 판매자가 도매인지,소매인지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중국 등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해외 생산기지가 도매시장 역할을 하고,국내 유통업계는 주로 소매만 담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동대문의 도매 쇼핑몰들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매 의류상들이 중국 공장과 계약을 맺고 직접 물건을 떼오면서부터"라고 분석했다.
박동휘/박신영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