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시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들에 대해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는 피해규모가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수십배에 달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로 볼 수 없다. 협상내용이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겠지만 정부와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불신(不信)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장 어제 국회에서는 정부와 민간 사이에 피해규모 예상치가 최대 20배까지 차이나는 경우가 있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발언이 나왔다. 정부가 제약분야 피해규모를 연간 1000억원 정도라고 보는 데 반해 민간 쪽에서는 1조~2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제약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농업 피해규모를 정부는 연간 9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는데 농민단체에서는 2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저작권 연장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연간 100억원 정도라고 추정하는데 민간쪽에서는 1000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를 입는 입장에서는 그 피해의 정도가 정부의 주장보다 크게 느껴지는 측면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제일 심한 제약의 경우 사실 협상타결 내용은 거의 알려져 있다. 신약의 자료독점권 인정,특허기간 연장,그리고 의약품 허가와 특허연계 등이다. 이로 인해 복제의약품이나 개량신약의 출시나 개발에 어느 정도 타격이 있을 것이란 점은 정부나 민간 모두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과연 어느정도일 것이냐인데 아무리 서로 간의 인식(認識)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다를 수는 없다.

정부는 협상결과를 토대로 과학적인 피해규모 추정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 FTA 반대론자들에게 새로운 빌미를 주는 꼴이 될지 모른다. 또한 피해규모 추정은 보상 등과 관련하여 한정된 재원의 배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FTA 반대단체들이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피해를 부풀리고 보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도 안될 일이다. 피해규모는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다. 정작 시급한 것은 구조전환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대책들인데 이런 것들이 피해규모 추정 논란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