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 와세다대 교수·경제학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한국의 매스컴은 환호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초점은 미국과의 FTA에서 한국이 일본과 중국을 '따돌렸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한국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밤잠을 설칠 정도로 질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의 언론 매체들도 일단 틀에 박힌 상투적 표현으로 '일본이 한 발 늦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재계는 정부의 늑장대응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 내 FTA담당자들은 정책추진에 힘을 얻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FTA효과를 선전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미·일 FTA 구상은 예전부터 있던 일이었다. 일본이 농업보호를 과감히 포기했더라면 언제라도 체결이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의 공업제품 관세는 현재 세계 최저 수준이다. 농산물을 제외한 제품의 관세만 따지면 일본과 미국은 이미 낮은 수준의 FTA를 맺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에 FTA보다 중요한 건 1980년대 이후 계속된 미·일 간 무역마찰이다. 주요 품목에 있어선 미국은 사실상 일본의 자유무역 상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철강제품은 쌍방이 무관세이지만 미국은 일본의 강판제품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반덤핑'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한·미 FTA가 일본에 미칠 영향을 업종별로 보면 자동차의 경우 일본 기업들은 이미 미국에 25개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큰 피해가 없을 것이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관심은 미국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의 위기와 재편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전자·전기 업계도 미국은 물론 일본과 FTA를 맺고 있는 멕시코에서 생산을 늘리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미 FTA에서 일본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미국의 무역구제조치에서 한국이 제외돼 특혜를 받게 된 것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과 미국의 무역마찰에선 공산품보다 서비스가 이슈다. 서비스도 특정산업의 개방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우정민영화에 따른 보험업무와 국제항공편을 이용한 서비스의 경쟁조건,미국의 보험과 건설업에 대한 주법(州法) 장벽과 독특한 특허제도 등이 주류다.

한국은 일본과의 공산품(工産品) 경쟁에만 관심을 두지만 일본의 관심은 좀 다르다. 예컨대 반도체의 경우 한국에 밀린 도시바는 반도체의 부활보다 수준 높은 의료기기와 작년 1월 인수한 웨스팅하우스의 발전사업에 더 관심이 많다. 일본과 미국의 통상협의에서도 관심은 역시 공산품 관세보다는 그러한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관심은 또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원천,10년 불황을 넘어서 겨우 나아진 내수경제 등에 집중돼 있다. 농업보호는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지나친 측면이 있지만 규제완화로 농업법인의 주식회사화(化)가 가능해졌고,농지의 확대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야채와 과일의 브랜드화와 신상품 개발이 진행돼 쌀조차 '관세인하를 해도 망할 쌀농가는 홋카이도뿐'이란 얘기도 있다. 또 일본 스스로의 규제완화 노력이 성과를 거둔 곳도 많다. 예전에 '암흑대륙'이라고 불렸던 물류도 지금은 어쨌든 생산성 측면에서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쇄신의 원동력은 결국 국내에서 비롯됐지,해외로부터는 아니었다.

한·미 FTA는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 성사된 합의다. 한국의 추진력과 돌파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일본인은 없다. 그러나 질투를 하는 사람도 또 없다. 그것은 올바른 것인지 여부는 차치하고 일본엔 당분간 더 중요한 아젠다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이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 내는 것이다. 다양한 FTA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도약을 위한 보증수표는 아니다. FTA로 국가 간 경쟁에서 이긴다는 FTA내셔널리즘은 허무할 뿐이다. 기쁨에만 빠져 있기 전에 한·미 FTA의 기회를 살리기 위한 규제완화,실효성이 있는 연구개발(R&D) 지원,성숙한 노사관계 등 국내개혁을 착실히 진행해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도 이젠 다른 나라를 흉내내는 것만으론 더이상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fukagawa@waseda.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