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재권 침해 어느정도길래…] DVD가게 10곳중 9곳 불법복제품
미국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 제소한 10일 오전 주중 한국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 뉘런제(女人街) 인근의 한 DVD판매점.

한 젊은 여성이 10위안(약 1200원)을 내고 사간 DVD는 할리우드 영화인 '300'이었다.

'300'은 지금 한국의 극장에서도 상영 중인 최신작으로 정작 중국에선 폭력성을 들어 심의가 거부된 영화다.

가게 점원은 그 젊은 여성에게 "한 장을 살 때마다 도장을 하나씩 찍어주고 도장이 10개 모이면 DVD 1개를 공짜로 준다"며 "회원카드를 만들면 최신작이 들어올 때마다 연락해주겠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 뒤에 서 있던 한 청년은 유명한 밴드인 아바의 골드음반 등 세 장의 CD를 들고 15위안을 카운터에 내밀었다.

중국에선 이처럼 '짝퉁' DVD와 음반을 아무데서나 살 수 있다.

시내 중심부이건 변두리건 멀쩡한 DVD가게 10곳 중 9곳에서 불법 복제품을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제품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가격이다.

'짝퉁'이지만 A급은 포장이 깔끔하고 CD 안에 삭제된 부분이나 NG 장면이 들어 있는 것으로 개당 15위안 정도 한다.

겉보기에도 조악한 B급은 8~10위안 정도의 가격이 매겨진다.

일반적인 DVD가게에서 파는 제품은 대부분 B급 상품이다.

100위안을 내면 10장에서 12장 정도의 DVD를 살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검열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폭력 도박 귀신 등을 소재로 한 영화는 상영금지다.

중국을 모독하거나,선정적인 영화도 상영금지된 작품이 많다.

그러나 불법 복제품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롭다.

"중국인들이 불법 DVD에 관대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이라고 DVD가게에서 만난 베이징대 학생 지룽싱씨는 말했다.

불법 복제 DVD는 대형 도매상을 중심으로 각 가게에 퍼져나간다.

은밀한 거래가 이뤄질 것 같지만 아예 드러내놓고 사고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영화 제작이 끝나고 극장에서 상영되기 전부터 불법 DVD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시사회나 각 스폰서업체에 보내는 시제품 영화에서 새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으로 시제품을 보낼 때는 우편이나 인터넷을 쓰지 않고 아예 인편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박물관의 밤'이라는 영화DVD는 정식출시 전에도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에서 한국 DVD를 판매하기 시작한 CJ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최근 단속을 강화하면서 상하이 등지에서는 불법 DVD가 많이 자취를 감췄다고 하지만 아직도 시장규모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게 힘들 정도로 복제품이 범람하고 있다"며 "그러나 요즘 과거와 다르게 복제품 판매상들이 많이 위축돼 있는 것을 보면 중국 정부가 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불법 복제 DVD와 CD를 근절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광저우시에서 약 10만장의 불법 DVD를 파기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지재권 보호 노력을 미국이 전혀 감안하지 않고 WTO에 제소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 지재권 담당 위원인 톈리푸씨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지재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며 "이 같은 노력을 무시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