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부자 간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장.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와 손잡고 강신호 회장 측에 맞섰던 유충식 동아제약 부회장의 입에서 민감한 얘기가 흘러 나왔다.

업계 1위 동아제약과 2위 한미약품 간의 합병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앞으로의 과제지만,장기적으로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이다.

당시 "한미약품이 동아제약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던 터라 유 부회장의 이날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제약업계에서는 "발언의 '정치적' 맥락을 모두 떼어 놓고 본다면 아주 터무니없지만은 않다"는 반응도 꽤 많았다.

국내 제약업계가 급변하는 환경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짝짓기'를 통해 덩치를 키우는 게 절실하다는 이유에서다.



◆각종 악재로 구조조정 불가피

2000년 의약분업 실시 직후 제약업계에서는 중소제약사들의 줄도산으로 업계 구조조정이 촉발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빗나갔다.

중소제약업체들은 오히려 복제약 개발에 주력해 의원급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고 예상했던 업계 구조조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은지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제약사들은 업체 간 차별성이 없어 M&A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적은 데다 오너십이 강해 그동안 구조조정이 활발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임진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줄곧 제약업계에서는 M&A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해 왔다.

하지만 작년 상반기부터 코멘트를 '가능하다'로 바꿨다"고 말했다.

약제비적정화 방안,한·미 자유무역협정(FTA),우수의약품제조기준(GMP) 강화 등 각종 정책환경이 제약업체들의 양극화와 차별화를 강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오너십도 2∼3세 경영체제로 가면 약해질 것이므로 M&A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조원대 대형 제약사 나와야

제약업계 구조조정의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향후 영업환경 악화 우려 때문에 매물로 나온 제약사가 60여개가 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중소제약업체들은 주력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을 정리하는 품목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품목 구조조정은 제약사 간의 차별화를 유도해 M&A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그러나 "매출 500억원대 기업 4개가 합쳐져 2000억원대의 제약사가 탄생하는 것은 전체 제약산업을 놓고 볼 때는 별의미가 없다"며 "R&D 능력을 갖춘 상위 제약사 간의 합종연횡으로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제약사가 탄생해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제약업체 관계자도 "장기적으로 연구개발 투자 규모를 매출액 대비 10%가량까지 끌어 올린다고 할 때 연매출이 최소한 1조원은 돼야 신약개발에 본격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제약사 M&A 시동

제약산업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들은 최근 M&A를 통한 덩치 키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양사가 대표적이다.

삼양사는 지난 2월 제약사 인수 검토설과 관련한 조회공시 답변에서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 된 바는 없지만 제약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양사 관계자는 "의약사업부가 핵심성장 사업군이라서 추진 계획을 세운 것"이라며 "2010년 매출 6조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는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동신제약 합병을 마무리함으로써 제약부문 매출을 2000억원대로 키운 SK케미칼도 최근 추가 M&A를 모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M&A를 통해 2008년께 국내 2∼3위의 제약사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