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든다. 얼굴이 빨개지고,목소리가 떨리고,식은 땀이 비오듯 흐른다. 심지어는 괄약근이 이완되는가 하면 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사회공포증이라고도 하는 일종의 대인공포증이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남의 시선을 정면으로 보지도 못할 뿐더러 자신의 숨소리까지도 상대방에 들릴까봐 두려워한다.

대인공포증은 취업난이 심화되고 사회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만연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고 생각하면 불안과 긴장이 쌓이면서 두려움이 엄습한다. 비록 혼자 있을 때도 상상에 빠져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다.

대인공포증은 누구나 겪는 일이긴 하지만 특히 한국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관련학계에서는 인구의 7~8%가 사회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10년 전에 비해 무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발표문화가 보편화된 서구와는 달리,우리 사회는 아직도 부끄러움이나 수줍음을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는 터여서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컴퓨터에 매달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통에 컴퓨터 마니아들의 사회성은 점점 무디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사춘기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젊은이들 중에 대인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인공포증은 직장의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이 승진이나 호봉과 직결돼 있어 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비단 실력뿐이 아니다. 상대에 따라 외모나 태도,호칭,말투 등의 응대법이 달라야 한다는 복잡한 우리의 의식구조도 대인공포증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대인공포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 대처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 직장이나 가정생활을 위협하는 복병으로 등장한 대인공포증을 그냥 보아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