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에서 기업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정부도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다.

또 실제로 '철밥통' 일자리를 너무 많이 만들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직접적인 고용은 개인과 기업 등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에 대한 과세를 임금 재원으로 한다는 점에서 파생적이며,그렇기 때문에 적정 수준에서 제한되어야 한다.

반면에 기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스스로 창출한 부가가치의 일부를 임금 재원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원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기업 안에서는 부가가치와 고용 창출이 상호 보강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국부(國富)의 원천이며,따라서 기업활동 생태계를 보면 그 나라의 현재 모습은 물론 미래도 가늠해볼 수 있다.

예컨대 미국 포천지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의 국가별 분포를 보면 대체로 초일류 기업이 많은 나라일수록 1인당 국민소득도 높은 부자나라다.

그리고 500대 기업의 국가별 분포를 연도별로 추적해서 보면 경제력 부침(浮沈)의 변화 상황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1995년부터 최근까지 글로벌 대기업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는 중국(2개→20개)으로 그 증가 속도에 위협감마저 느끼게 된다.

같은 기간 신경제 호황에 힘입어 미국(153→170)의 글로벌 대기업 수는 증가했고 일본(141→70)은 반토막이 났으니 이는 버블 붕괴의 오랜 후유증 때문이다.

영국(32→38)은 규제 완화 등의 노력으로 체면을 유지한 반면,독일(40→35)과 프랑스(42→30)는 정체,또는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 수는 1995년이나 지금이나 12개로 변함이 없다.

중국 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현상 유지에도 힘겨운 모습이다.

기업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초일류 기업 숫자 외에 일부에서는 기업 생태계를 보여주는 지표로 '기업가정신지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지수는 한 해 동안의 사업체 수 증감률,설비투자 증감률,연구개발 증감률 등을 조합해서 만든 것인데 다소 자의성이 있지만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이러한 지수를 만들어 발표한 바 있다.

두 기관은 측정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결론은 유사했다.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지수'는 계속 하락하는 추세며,근년에 와서는 아예 기업가정신이 실종되었다고 해야 할 만큼 바닥 수준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생태계(기업가정신)에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본래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종업원 10명 미만의 소기업 종사자 비중(88.6%)은 대단히 높고 250명 이상의 중견기업 종사자 비중(0.2%)은 현저히 낮아 그렇지 않아도 기업들의 성장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는 선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과소투자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어 규모의 상대적 영세성은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괜찮은 일자리'라는 게 반드시 대기업에만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안정성과 영속성 면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대기업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제조업에서 종업원 300명이 넘는 대기업 수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1000개가 넘었으나 지금은 약 800개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이 땅에서 기업가정신을 진정으로 북돋워야 한다.

그러자면 '기업은 왜 생기는가'의 문제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이 발생하는 까닭과 본질을 잘 이해해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창업이 감소하는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효과적인 대책 마련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왜 생기는가?' 단순하지만 이 질문의 답을 찾은 로널드 코스는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코스는 미국의 대공황기인 1932년,그의 나이 21세 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시장거래비용과 기업의 발생관계를 규명함으로써 경제학과 법학분야에서 기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차원을 높이는 공을 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코스의 설명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기업환경개선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은 기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마련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기업집단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고 규제는 늘 잘 나가는 기업집단을 겨냥한다.

기업가정신은 당연히 위축되게 마련이다.

황인학 < 한경硏 기업연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