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최근 외국 산업 스파이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먼저 한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을 꼽는다.

과거 선진국의 기술을 단순 모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선진국도 탐낼만한 기술이 생기면서 자연히 산업 스파이의 활동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IT(정보기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IT 기업들은 원천기술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당장 제품화가 가능한 상용기술은 세계 시장을 주도할 정도"라며 "후발국인 중국이나 대만은 물론 기술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도 이 상용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2003~2006년 적발된 해외 기술유출 사건 중 73%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IT 상용기술 부문에 집중됐다.

더 큰 문제는 기술 개발의 주역인 이공계 인력을 홀대 하는 사회 분위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은 "석·박사 출신 이공계 연구원의 연봉이 금융회사에 다니는 비슷한 또래의 대졸 직원과 비슷하거나 낮고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술 발명에 대한 보상도 충분하지 못하다"며 "재주는 곰(기술직)이 넘고 돈은 되놈(비기술직)이 챙긴다는 탄식이 연구원들 사이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모 중소기업 연구원은 "말이 좋아 연구원이지 직접 영업을 하고 사장 심부름을 할 때도 있다"며 "마음놓고 연구에만 전념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취업포털 케이티잡 등이 지난해 이공계 직장인 9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다시 태어나면 기술직을 택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78%에 달했을 정도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고용불안도 연구원들의 마음을 흔드는 요인이다.

석·박사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면 30대 초반인데 40대만 되면 명예퇴직 이야기가 나오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렇다보니 퇴직시 다른 회사로 쉽게 옮겨가기 위해 회사의 중요 기밀문서나 연구자료를 별도 보관하는 연구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 스파이들은 이같은 불안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지난 2004년 대만 반도체 회사가 국내 대기업 연구원 3명에게 접근해 첨단 LCD(액정표시장치) 기술을 빼내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대만 업체는 스카우트 조건으로 '1인당 연봉 2억원에 주택과 승용차 제공'을 약속했고 당시 30대 초중반이던 연구원들은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한결같이 "명백한 기술유출은 처벌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그 책임을 연구원 개개인의 잘못으로만 몰고가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연구원들을 언제 기술유출을 할지 모르는 '잠재적 산업스파이'로 의심하기 전에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