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大熙 < 성균관대 교수·법학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식재산권 분야는 권리와 그 집행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법정손해배상 및 저작권 침해와 관련해 일부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가령 인터넷상에서 MP3 음악파일 1개를 무단으로 다운로드해도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권리자가 아무런 손해를 입히지도 않은 침해자에게 손해배상을 부담시키고,권리자에게 손해배상에 대한 증명책임까지도 면제한다는 식이다.

결국 권리 침해소송만 내면 권리자는 자동적으로 배상을 받고,이러한 법정손해배상이 연장된 저작권 존속기간만큼 이뤄지며 저작물이 일시적으로 복제된 경우에도 허용돼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오해는 상당 부분 법정손해배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나왔다. FTA가 발효되더라도 저작권자가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침해 및 손해액을 증명해야 한다. 미국법상의 법정손해배상제도는 손해액을 증명하기 어려운 권리자로 하여금 최종 판결이 이뤄지기 전에 사전에 정해진 일정한 범위의 배상액(미국 저작권법은 750~3만달러)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법원이 이 범위에서 재량에 따라 배상액수를 정하는 제도다.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저작권자는 법정손해배상을 선택할 수 없으며,고의에 의한 침해는 액수가 15만달러까지 증액되지만 침해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었을 경우에는 하한선이 200달러까지 내려간다. 또 도서관 등의 직원이 자신의 행위가 저작물의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믿었을 경우에는 법정손해배상이 면제된다.

이런 점에서 법정손해배상은 침해자가 소송을 오랫동안 진행하는 것을 억제하고 배상액에 관한 당사자 간의 조정을 유도함으로써 저작권 침해를 억제하는 데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단 한 번에 의한 인터넷상에서의 저작물 다운로딩은 (P2P에 의해 공유하지 않는 한) 사적(私的)복제에 해당돼 저작권 침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서 법정손해배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증명해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인터넷상 복제에 대해서도 사적 복제 등 저작권에 대한 제한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

또한 저작권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한 경우 손해가 발생한다. 저작권자는 저작물 이용에 대한 이용료를 받을 수 있으며,저작권법도 저작권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액수를 손해배상액으로 정하고 있다.

둘째,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침해에 대한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고의나 과실에 의하지 않은 침해에 대해선 손해배상을 낼 수 없다.

셋째,법정손해배상의 요소는 이미 우리 법에 어느 정도 포함돼 있으며 우리가 시행했던 제도다. 현행 저작권법은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법원의 재량에 의해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 결과를 참작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법정손해배상제도와는 배상액의 범위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한 2003년 개정 이전의 저작권법은 출판물은 5000부,음반은 1만장이 복제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해 법정손해배상제도와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주로 형사적인 제재(징역 및 벌금)에 의해 저작권이 집행돼 왔으며 손해배상액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따라서 법정손해배상제도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민사적 해결방법으로서 선진적인 법집행과 저작권 침해억제를 위해 기여할 것이다. 다만 법정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면서 정책당국은 이러한 제도가 가져올 부작용을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 사전에 정해질 배상액의 범위를 우리나라 경제사정이나 1인당 국민총생산(GNP) 등을 고려해 적정한 선에서 정하고,저작권을 등록된 저작물에만 허용하도록 하고,과실에 의한 침해와 도서관 등에 대해 배상액을 줄이거나 배상을 면제해야 한다.

저작권 침해를 억제해 한국의 저작권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자는 FTA 취지에는 이견이 없다. 법정손해배상제도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이해와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