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禮善 < 오픈타이드차이나 대표 wyeth@opentide.com.cn >


몇 년 전 회사 대리 시절 사무실에 근무를 할라치면 가끔씩 낯선 중년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말없이 들어와서는 책상 위에 메모지도 놓고 가고 아니면 은단이나 껌 한 통을 놓고 갔다.

요새야 파이낸셜 컨설턴트니 뭐니 해서 고상한 이름이지만 전에는 그저 보험아줌마라고 불렀다.

몇 번을 오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지만 복도에서 담배라도 피우다 마주치면 여지없이 보험 가입을 권유한다.

이 대리님 큰아이 몇 살이에요? 학교 다녀요? 등등으로 관심을 끈다.

아무리 해도 꿈쩍하지 않다가도 결국엔 집요함과 정성에 굴복해 큰아이 명의의 교육 보험을 하나 든다.

우리네 심사가 그렇지 아니한가.

자주 보고 이 얘기,저 얘기 하다보면 결국 정에 못이겨 보험을 가입하는 거다.

그러나 요즘 사무실은 어디나 할 것 없이 카드 출입문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그리 호락호락 방문을 허용치 않는다.

그러한 방법의 보험 가입 권유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에서 방문 판매로 성공한 기업이 중국에 와서도 그러한 방식의 영업을 시도했었다.

우리네야 아무리 아파트라도 신분을 밝히고 들어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주(主)공략 대상인 주부의 경우 아이들 교육문제나 시댁과의 갈등 문제를 주제로 마치 인생 상담사 역할을 하다보면 서로 친해지고,친하게 지내다 보면 필요한 물건을 소개하고,또 마지 못해 정에 이끌려 구매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의 중국은 그렇지 않다.

대개의 중국 가정주부는 대낮에 집에 없다.

모두들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방문 판매원이 다닐 곳이 없다.

대도시 주부들은 아침 일찍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는 직장에 출근한다.

아이들 학교도 그런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문 판매뿐만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꽤나 선풍을 일으킨 TV 홈쇼핑 역시 중국에서 아직 그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낮에 TV 보면서 소일(消日)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는 제일 큰 이유가 낮에 주부가 집에 없다는 것이다.

주타깃이 없으니 영업이 잘 될 리가 없다.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고 혁명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의 성과 가운데 제일 큰 것 중의 하나가 여성 해방이다.

중국은 여성 해방을 넘어 남녀 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여성의 자원화(資源化)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되어 있는데 이는 부러움과 동시에 또 다른 위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