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

영국 하원에서 고든 브라운 재무부 장관이 행한 2007년도 예산안 보고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연설에서 브라운은 지난 10년 동안 집권 노동당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열거했다. 영국 경제는 1997년에서 2006년 사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G7 국가(서방선진 7개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06년 현재,미국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2만2849달러였던 국민소득이 3만6850달러로 껑충 뛴 것이다. 경제성장률도 마찬가지다.

G7 국가 중 꼴찌였던 성장률은 독일 프랑스 일본과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러한 영국의 성장은 민간 부문의 눈부신 활약 덕택이었다. 기업 투자는 1997년 이래 48%나 늘었으며 국가 채무(債務)는 10년 전 국민총생산액의 44%에서 38%대로 낮아졌다.

한때 IMF 위기를 겪기도 했던 영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좌파 정당 중 하나인 노동당 정권 아래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한 것이다.

이른바 진보세력,민주화 운동 세력이 정권을 잡았던 지난 10년,우리 경제는 어땠나?

1965년 이후 30년 동안 연평균 8.7%라는 가파른 성장률을 기록했던 우리 경제. 1997년의 외환 위기 이후 짧은 순간이나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했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매년 3% 내지 4%의 성장률로 잠재성장률(潛在成長率)인 5%에도 못 미치는 실적을 남겼다. 작년 예상 성장률은 5%에 달했지만 금년은 한국은행이 4.5%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미래 역시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해외 직접 투자가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 역시 설비 투자를 꺼리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던 국내총생산(國內總生産) 대비 설비투자율이 1990년대 후반부터는 OECD 회원국 평균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때 1%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들은 설비 투자를 늘리는 데 비해 우리는 역주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 재정도 악화일로(惡化一路)에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목(名目)으로 시작된 국가 채무의 증가 추세는 참여정부 들어 가속화됐다. 2002년 말 133조원대였던 채무는 2006년 말에는 280조원대에 이르게 됐다. 2002년,GDP를 기준으로 19%에 머물렀던 국가 채무가 순식간에 30%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두 나라의 경제가 이같이 판이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과 우리나라의 좌파 정권은 큰 차이가 있었다. 영국 노동당은 경제를 국정 운영의 최우선에 놓았다. 해마다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피땀어린 노력을 경주했다.

관성적인 좌파 정책과 철두철미하게 단절했다. 창당 이래 떠받들어 온, "모든 산업체의 국유화를 추구한다"는 당 규정을 폐기했을 뿐 아니라 중앙은행을 독립시켰다. 국영 산업체를 민영화하고 파격적인 규제 혁파를 단행하는 동시에 법인세를 인하하는 등 친성장 친기업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우리는 달랐다. 성장의 중요성을 말하면 개발 독재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어있다며 조롱을 했다. 서구 사회에서 폐기된 지 오래인 논리와 이론을 들이밀며 친성장 정책을 게을리하고 규제 혁파를 미뤘다.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정부가 나서면 경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더이상은 곤란하다.

이제는 바뀔 때다. 보수 진영의 변화가 절실한 것 이상으로 진보 진영의 반성이 필요하다. 영국 노동당에 버금가는 자기 개혁이야말로 진보 진영이 살고,우리 경제가 사는 길이다. 영국 좌파 정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