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김훈씨(50)의 새 장편소설 '남한산성'(학고재) 서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가 말한 '주린 성'은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에 쫓긴 인조와 신하들이 47일 동안 겪은 온갖 치욕의 무대.

추위와 굶주림으로 피폐해진 성 안에서 결사 항쟁을 고집하는 예조판서 김상헌 중심의 주전파와 화친을 내세우는 이조판서 최명길 중심의 주화파 간 대립은 계속된다.

인조는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한 채 절망감으로 '땅에 고개를 박고 울음을' 터뜨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

인조는 결국 청나라의 '칸' 앞에 나아가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박는 '삼배구고두'를 하며 항복한다.

작가는 특유의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며 주전파와 주화파 어느 쪽에도 힘을 싣지 않는다.

인조가 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도 담담하게 상황을 묘사할 뿐이다.

'조선 왕이 절을 멈추었다.

칸이 휘장을 들추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 칸은 바지춤을 내리고 단 아래쪽으로 오줌을 갈겼다….(중략)…칸이 셋째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남은 절을 계속했다.'

이것은 그가 책머리에 쓴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인조가 삼배구고두를 한 곳)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았다'는 구절과 직결된다.

찬란한 영광뿐 아니라 숨기고 싶은 굴욕마저 역사의 일부분임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소설 '남한 산성'에 '저항'과 '항복'의 이분법적인 구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어사 이시백은 어느 쪽에 설 것이냐는 최명길의 질문에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라고 말한다.

영의정 김류 또한 인조에게 "신은 참람하게도 체찰사의 직을 겸하여 군부를 총괄하고 있으니 소견이 있다 한들 어찌 전과 화의 일을 아뢸 수 있겠사옵니까"라는 말로 대신할 뿐이다.

다양한 관점의 인물들이 더해지면서 소설은 더욱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갖춰간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기름진 뱀'과 같은 '말'의 독소를 신랄하게 벗겨낸다.

그는 또 전작에서도 사용한 '배설의 표현'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진하게 그려낸다.

이는 역사 속에 정복과 항복이라는 거대한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공인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 '나루'가 임금 앞에서 오줌을 지리는 것도,인조가 청군에 항복하는 것으로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대장장이 서날쇠가 '뒷마당 장독 속의 똥물을 밭에 뿌리는 것'도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작가는 결국 "기구한 역사의 치욕을 감당한 삼전도 비석을 우리가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라며 아무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라 해도 언제든지 현재형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