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유용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최근 금융권에서 나왔다.

은행의 보통예금만을 급여통장으로 사용해왔던 고객 중 상당수가 체크카드의 결제 기능이 있는 증권사의 자산관리계좌(CMA)로 옮겨가고 있다.

CMA 인기는 자금시장의 초단기화를 반영한 현상이다.

하지만 수시입출금이 가능하고 각종 공과금 결제기능이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수익률(4% 이상)이 은행 보통예금 금리(연 0.1~0.2%)보다 높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투자도 할 수 있고 포인트 적립 혜택도 제공된다.

애초에 은행들이 대금결제 계좌를 확보하려는 전업계 카드사들과 선뜻 계약을 맺었으면 굳이 카드사들이 증권사를 기웃거릴 일도 없었지만,어쨌건 '괜찮은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3월 말까지 개설된 CMA계좌는 227만건으로 작년 9월 말에 비해 120만건 이상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가 자본시장통합법 심의를 시작했고 증권사(금융투자회사)에 소액지급 결제기능을 부여할지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은행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반대논리를 폈다.

자칫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증권사 고객예탁금에는 지급준비금 의무가 없는 점을 들어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예견된 위험은 보완책을 마련하면 예방할 수 있다.

결코 고객편익을 희생시키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오랫동안 각종 보호막 속에서 성장해 온 탓인지 몰라도 은행은 업무 영역을 계속 넓혀가면서도 고유업무는 한사코 지키려는 입장을 취해왔다.

2003년 8월 방카슈랑스 도입으로 은행은 창구에서 보험을 팔고 있다.

내년 4월부터는 종신보험도 팔 수 있게 된다.

생보사들은 은행에서 10%가량 싼 종신보험을 팔면 자신들은 고사할 것이라며 4단계 방카슈랑스를 철회해줄 것을 요구할 태세다.

은행은 펀드도 판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기업 등 6개 은행이 지난해 펀드 및 보험 판매로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은 1조1324억원이다.

보험사 증권사를 얼마든지 자회사로 둘 수 있다.

이제 은행들은 국내외에서 경쟁 범위를 넓혀야 한다.

먼저 국내에서부터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융합화·디지털화가 급속히 추진되는 상황에서 칸막이 영업으로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액 지급결제 기능을 증권사에 주는 것은 물론이고 보험사에도 은행 업무(어슈어뱅크)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재벌 계열 보험사의 은행업 진출이 걱정이라면 소매은행 면허만 떼내 주면 된다.

이런 돌파구 없이 상장된 생보사들이 유입된 자금으로 뭘 하겠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벽을 없애면 금융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좋은 상품이 많이 나올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창한 '경쟁의 이익'이 바로 그것이다.

시중 은행들이 CMA에 대응한 신상품을 속속 선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한 '금융한국'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을 경쟁 속으로 밀어넣으면 된다.

경쟁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만 고객 편익은 그 이상으로 커진다.

경제 전체로 보면 플러스 섬 게임이다.

이익원 경제부 차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