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사건이라는 미국발 비보(悲報)가 전해지자 한국 네티즌들의 손끝에 불이 붙었다.

'조승희'라는 이름은 단박에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올랐고 시시각각 올라오는 속보마다 엄청난 양의 댓글이 달라붙었다.

그러나 사건 개요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은 엉뚱한 곳으로 옮겨졌다.

조승희씨가 '1984년생 한국인'이라는 짤막한 화두를 들고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싸이월드가 융단폭격을 받았다.

이름과 태어난 연도만 알면 홈페이지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활용,조씨의 생전 모습을 찾고자 하는 네티즌들이 폭증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84년생 조승희'가 희생양이 됐다.

한 네티즌이 '여기가 조승희의 홈페이지다'라고 깃발을 꽂자,이 미니홈피는 한꺼번에 수백 건의 댓글이 달리며 하루 종일 몸살을 앓기도 했다.

보다 못한 이 홈페이지의 주인이 '난 (총기사건을 일으킨) 조승희가 아니니 악플(악의에 찬 댓글)을 자제해달라'는 글을 올리고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한편 사이버 공간의 다른 쪽에서는 조씨의 초등학교를 찾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조씨가 초등학교 때 이민 간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임무수행(?) 과정에서 '조승희 여자친구','조승희 초등학교 모습' 등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자료 사진들이 인터넷을 활보했다.

한 술 더 떠 여자친구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달라는 요구도 빗발쳤다.

급기야 심오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네티즌까지 등장했다.

미국 경찰의 발표가 의문 투성이라는 전제를 달고,이번 사건은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자작극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거리낌없이 펼쳤다.

조승희씨는 총기사건의 '희생자'에서 '용의자'로 엉겁결에 둔갑하게 됐다는 논리였다.

반면 자국민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미국 언론은 애써 조승희씨의 국적을 강조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호기심의 대상이나 비아냥의 수단으로 삼기엔 너무 큰 슬픔이라는 것을,한국의 일부 극성 네티즌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다.

안재석 국제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