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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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花緖 < 명지대 교수·이민학 >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 범인이 한국이민 1.5세대 조승희씨로 밝혀짐으로써 이민자의 후세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21세기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 이민자가 있고 그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지구촌 시민이고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외국·내국인 상관없이 그 지역 주민으로 인정하는 범인류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국적,민족,문화에 근거한 집단화는 갈수록 강해지고 이민자 사회 통합문제도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다루는 미국 대중매체도 어렸을 때 이민 와서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을 '한국인 이민자'라고 보도하고 있다. 조승희씨는 미국에서 성장한 미국사회의 산물이다. 엄격히 말하면 그는 피만 한국인이다. 이 피 때문에 재미동포들은 불특정 보복대상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고 한다. 결국 다민족 용광로 사회인 미국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조승희씨는 이민간 지 15년이 넘었지만 미국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의 부모는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이민자였던 것 같다. 이민자는 크게 디아스포라(Diaspora)와 트랜스내셔널(초국적인·超國籍人)로 나뉜다. '이산(離散) 유대인'이란 의미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는 여건상 어쩔 수 없이 모국을 떠난 사람이다. 그들의 특징은 강한 귀소본능에 전통지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이다. 그들은 거주국 주류사회에 속하질 않는다. 디아스포라에게 국적은 정체성과 직결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귀화하지 않고 '미국 속의 한국인'으로 산다. 디아스포라에게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자존심의 근거다. 그들은 자녀에게 우리 전통가치관을 가르치고 보수적으로 교육시킨다.
거기에 비해 트랜스내셔널은 중·상위계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고 세계를 무대로 살기 위해 이민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범세계적·탈(脫)민족주의적이며 거주국 주류에 들어가서 산다. 그들은 미국 여권을 들고 좋은 직장을 찾아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한민족'이라는 것은 그저 자기의 다중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도 약하다.
그런데 해외동포 중 놀라울 정도로 디아스포라가 많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교육을 중요시해 왔다. 그들은 자녀교육이 인생의 목적이다. 이민을 가는 목적과 생활의 모든 것이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에 집중돼 있다.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막노동을 불사하며 자식교육비를 감당한다. 그 결과 자녀들은 사회적으로 수직 상승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에게 효도한다. 이것이 해외한인들의 성공신화이고 타(他)소수민족 집단의 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디아스포라는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에 가서도 한국식 성공 개념을 자녀에게 주입시킨다. 부모가 미국적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자녀들에게 학교 성적만 올리라고 강요한다. 폐쇄적 보호는 부모 자식 사이를 단절한다. 자녀들은 한국과 미국문화 사이에서 혼동되고 갈등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그리고 학업 성적은 좋지만 폐쇄적인 인간이 되어 간다. 그들의 내면은 분노와 고독과 혼동으로 범벅이 된다.
이민자 자녀교육은 양면성이 있다. 성공하면 이중문화·언어를 체득해 더 많은 진리를 감지하고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엘리트로 성장한다. 실패하면 우리 민족문화와 타문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문화적 미아가 돼버린다.
이 시대 우리 정부 이민정책도 양면을 갖고 있다. 세계화에 의해서 전 인류가 초국적으로 이동하는 다민족·다문화시대,즉 트랜스내셔널 시대를 감당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국민과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보호해야 한다. 조승희씨는 한국 국적 소지자이지만 미국 주민이었다. 다중정체성을 가진 21세기 전형적 이민자1.5세대였다. 그는 세계화시대 이민자로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비극적 실패작이 됐다. 그가 저지른 사건은 이민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교민사회에 대해 각성을 하게 만들었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 범인이 한국이민 1.5세대 조승희씨로 밝혀짐으로써 이민자의 후세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21세기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 이민자가 있고 그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지구촌 시민이고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외국·내국인 상관없이 그 지역 주민으로 인정하는 범인류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국적,민족,문화에 근거한 집단화는 갈수록 강해지고 이민자 사회 통합문제도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다루는 미국 대중매체도 어렸을 때 이민 와서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을 '한국인 이민자'라고 보도하고 있다. 조승희씨는 미국에서 성장한 미국사회의 산물이다. 엄격히 말하면 그는 피만 한국인이다. 이 피 때문에 재미동포들은 불특정 보복대상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고 한다. 결국 다민족 용광로 사회인 미국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조승희씨는 이민간 지 15년이 넘었지만 미국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의 부모는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이민자였던 것 같다. 이민자는 크게 디아스포라(Diaspora)와 트랜스내셔널(초국적인·超國籍人)로 나뉜다. '이산(離散) 유대인'이란 의미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는 여건상 어쩔 수 없이 모국을 떠난 사람이다. 그들의 특징은 강한 귀소본능에 전통지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이다. 그들은 거주국 주류사회에 속하질 않는다. 디아스포라에게 국적은 정체성과 직결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귀화하지 않고 '미국 속의 한국인'으로 산다. 디아스포라에게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자존심의 근거다. 그들은 자녀에게 우리 전통가치관을 가르치고 보수적으로 교육시킨다.
거기에 비해 트랜스내셔널은 중·상위계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고 세계를 무대로 살기 위해 이민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범세계적·탈(脫)민족주의적이며 거주국 주류에 들어가서 산다. 그들은 미국 여권을 들고 좋은 직장을 찾아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한민족'이라는 것은 그저 자기의 다중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도 약하다.
그런데 해외동포 중 놀라울 정도로 디아스포라가 많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교육을 중요시해 왔다. 그들은 자녀교육이 인생의 목적이다. 이민을 가는 목적과 생활의 모든 것이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에 집중돼 있다.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막노동을 불사하며 자식교육비를 감당한다. 그 결과 자녀들은 사회적으로 수직 상승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에게 효도한다. 이것이 해외한인들의 성공신화이고 타(他)소수민족 집단의 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디아스포라는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에 가서도 한국식 성공 개념을 자녀에게 주입시킨다. 부모가 미국적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자녀들에게 학교 성적만 올리라고 강요한다. 폐쇄적 보호는 부모 자식 사이를 단절한다. 자녀들은 한국과 미국문화 사이에서 혼동되고 갈등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그리고 학업 성적은 좋지만 폐쇄적인 인간이 되어 간다. 그들의 내면은 분노와 고독과 혼동으로 범벅이 된다.
이민자 자녀교육은 양면성이 있다. 성공하면 이중문화·언어를 체득해 더 많은 진리를 감지하고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엘리트로 성장한다. 실패하면 우리 민족문화와 타문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문화적 미아가 돼버린다.
이 시대 우리 정부 이민정책도 양면을 갖고 있다. 세계화에 의해서 전 인류가 초국적으로 이동하는 다민족·다문화시대,즉 트랜스내셔널 시대를 감당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국민과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보호해야 한다. 조승희씨는 한국 국적 소지자이지만 미국 주민이었다. 다중정체성을 가진 21세기 전형적 이민자1.5세대였다. 그는 세계화시대 이민자로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비극적 실패작이 됐다. 그가 저지른 사건은 이민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교민사회에 대해 각성을 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