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pinion] 이덕일칼럼 - '나는 나를 믿는다' 영웅들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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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자기 확신에서 던진 승부수가 승리한 예는 역사에서 무수히 많다. 삼봉 정도전이 고려 우왕 9년(1383) 함길도 함주(咸州)에서 동북면도병마사로 있던 이성계를 찾아간 것은 하나의 승부수였다. 8년 전인 우왕 1년(1375) 권신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정책을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의 거평부곡(居平部曲)으로 귀양 간 이후 그의 인생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알아주기는커녕 억압만 하는 세상에서 그는 유배와 방황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이성계를 처음 만난 정도전이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한 말이 새왕조 개창의 신호가 된다. 이성계가 “무슨 뜻인가?”라고 묻자 “동남방의 왜구(倭寇)를 치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에둘러 답하지만 두 사람 모두 ‘무슨 일’이 왜구를 치는 것이 아니라 ‘개국(開國)’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용비어천가』는, “태조께 천명이 있음을 은연 중 빗기는 말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둘이 만난 지 불과 10년이 채 안 되서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다. 이성계의 무력과 결합해 새왕조를 개창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등을 통해 유배와 방황 시절 수 없이 꿈꾸었던 새 왕조를 설계한다.
『난중일기』 1597(선조 30) 9월 15일자는 12척의 전선으로 300여 척 이상의 일본 수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이순신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 훈시한 내용을 싣고 있다.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전제한 이순신은 “한 사내가 오솔길의 길목을 지키면 천 사내를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라고 여러 장수들을 격려한다. 이렇게 명량해전에 나간 이순신은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고 원균이 빼앗겼던 제해권(制海權)을 다시 차지한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가 ‘이 군대로 무슨 일이든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나, 이순신이 여러 장수들에게 ‘한 사내가 오솔길의 길목을 지키면 천 사내를 두렵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은 모두 강한 자기 확신 속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한 사람은 조선을 건국했고, 또 한 사람은 조선을 망국의 위기에서 지켜냈던 것이다. 자기 확신은 세상을 보는 눈과 그에 대등하는 구체적인 실력이 뒷받침될 때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무모함을 자기 확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논어(論語)』에는 자로가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발로 강을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할 줄 알고 꾀를 잘 내어 성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자기 확신은 바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꾀’를 가지고 있을 때 성사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조선과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의 토대 위에서 미래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남들이 움추릴 때 과감하게 투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도전이나 이순신 모두 무모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신의 능력을 면밀히 비교하고 전략을 수립한 결과 승리를 거둔 지략의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자기 확신, 그리고 그 확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승부사의 근성을 함께 갖고 있을 때 미래는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초청 칼럼니스트 프로필 및 저서소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숭실대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사의 온갖 미스터리를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선명하게 풀어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조선 왕 독살사건』 등의 문제작을 펴내면서 우리시대의 대표적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했다.『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의 여인열전』 『그 위대한 전쟁』등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묻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 글은 한경닷컴 '초청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다른 칼럼을 더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http://www.hankyung.com/board/list.php?id=column_invite&no=1&page=1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자기 확신에서 던진 승부수가 승리한 예는 역사에서 무수히 많다. 삼봉 정도전이 고려 우왕 9년(1383) 함길도 함주(咸州)에서 동북면도병마사로 있던 이성계를 찾아간 것은 하나의 승부수였다. 8년 전인 우왕 1년(1375) 권신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정책을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의 거평부곡(居平部曲)으로 귀양 간 이후 그의 인생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알아주기는커녕 억압만 하는 세상에서 그는 유배와 방황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이성계를 처음 만난 정도전이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한 말이 새왕조 개창의 신호가 된다. 이성계가 “무슨 뜻인가?”라고 묻자 “동남방의 왜구(倭寇)를 치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에둘러 답하지만 두 사람 모두 ‘무슨 일’이 왜구를 치는 것이 아니라 ‘개국(開國)’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용비어천가』는, “태조께 천명이 있음을 은연 중 빗기는 말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둘이 만난 지 불과 10년이 채 안 되서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다. 이성계의 무력과 결합해 새왕조를 개창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등을 통해 유배와 방황 시절 수 없이 꿈꾸었던 새 왕조를 설계한다.
『난중일기』 1597(선조 30) 9월 15일자는 12척의 전선으로 300여 척 이상의 일본 수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이순신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 훈시한 내용을 싣고 있다.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전제한 이순신은 “한 사내가 오솔길의 길목을 지키면 천 사내를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라고 여러 장수들을 격려한다. 이렇게 명량해전에 나간 이순신은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고 원균이 빼앗겼던 제해권(制海權)을 다시 차지한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가 ‘이 군대로 무슨 일이든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나, 이순신이 여러 장수들에게 ‘한 사내가 오솔길의 길목을 지키면 천 사내를 두렵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은 모두 강한 자기 확신 속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한 사람은 조선을 건국했고, 또 한 사람은 조선을 망국의 위기에서 지켜냈던 것이다. 자기 확신은 세상을 보는 눈과 그에 대등하는 구체적인 실력이 뒷받침될 때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무모함을 자기 확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논어(論語)』에는 자로가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발로 강을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할 줄 알고 꾀를 잘 내어 성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자기 확신은 바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꾀’를 가지고 있을 때 성사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조선과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의 토대 위에서 미래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남들이 움추릴 때 과감하게 투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도전이나 이순신 모두 무모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신의 능력을 면밀히 비교하고 전략을 수립한 결과 승리를 거둔 지략의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자기 확신, 그리고 그 확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승부사의 근성을 함께 갖고 있을 때 미래는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초청 칼럼니스트 프로필 및 저서소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숭실대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사의 온갖 미스터리를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선명하게 풀어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조선 왕 독살사건』 등의 문제작을 펴내면서 우리시대의 대표적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했다.『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의 여인열전』 『그 위대한 전쟁』등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묻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 글은 한경닷컴 '초청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다른 칼럼을 더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http://www.hankyung.com/board/list.php?id=column_invite&no=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