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주인공은 말한다. "모든 사람은 섬이다. 바야흐로 섬의 시대다. " 맞다. 우리 모두 섬처럼 외롭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함께 기뻐해줄 친구는 찾기 어렵다. 아이들은 내신 때문에 친구의 노트를 훔쳐다 버리고 어른들은 언제 자신을 밀칠지 모르는 동료를 경계하느라 마음을 열지 못한다.

아무도 먼저 말 걸지 않는 세상 속에서 다들 혼자 떤다. 가족이 있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내는 아침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온종일 전화 한 통 없는 남편과 자식 틈에서,남편은 위 아래로 치이느라 불안한 회사내 사정을 모르는 아내를 대하며,자식들은 말 안통하는 부모를 보며 한없이 외롭다.

우리가 이러니 미국사람은 오죽하랴. 지난해 9월 시카고대학 내셔널 오피니언 리서치센터는 미국인들의 고립감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1985년만 해도 열 명 중 아홉은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있었는데 2004년 조사에선 4명 중 1명이 하소연할 데가 없고,중요한 문제를 의논할 친구 또한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리스먼이 지적한 '군중 속의 고독'이 더더욱 심화된 셈이다. 예전엔 그래도 대부분 집단에 속하려 애썼다. 생각이 달라도 침묵하면서. 이젠 상당수가 그러지 않는다. 배경과 가치가 다른 집단에 끼여 차이를 절감하면서 더 큰 고립감에 시달리느니 아예 게임 등을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억지로라도 집단에 소속되면 고립무원이란 생각을 덜 수 있는데 혼자 있노라면 주위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기 십상이다. 두려움은 자신을 소외시킨 세상과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노,분노는 복수심을 부른다.

고립감에 따른 증오를 폭발시키려는 경우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내는데 아무도 이를 몰라주면 결국 사고를 친다고 한다. 버지니아공대 참극을 저지른 조승희씨도 여러모로 자신의 고립감과 분노를 드러냈지만 눈치채고 받아준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혼자말이라도 들어주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순간 누군가 내 관심을 필요로 하진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