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9년 전으로 돌려 1차 연금개혁 때를 보면 지금과 상황이 사뭇 달랐다. 지금처럼 개혁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1994년 세계은행이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한 후 연금제도개선기획단이 정부에 개혁안을 제출한 게 1997년 말이었다. 보험료를 2025년 12.65%까지 올리고 급여율은 70%에서 60%로,연금받는 나이는 60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늦추자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안이었다. 정부는 이를 약간 손질해 이듬해 4월 국회에 제출했고,그로부터 여덟달 뒤인 12월17일 국회는 본회의 마지막 전날 3당 합의안을 조용히 통과시켰다. 연금개혁이 말 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물론 당시는 외환위기로 줄도산·실업대란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다. 국민들이 한가롭게 수십년 후에 받을 연금을 놓고 왈가왈부 따질 때가 아니었다. 또 연금을 시작한 지 10년밖에 안 돼 정치권이나 언론이 연금개혁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2차 연금개혁 상황은 9년 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다. 개혁안이 국회로 넘어간 지 3년반이 넘었지만 언제 개혁안이 어떤 형태로 통과될지 예측 불허다. 가장 큰 이유가 연금이라는 경제 문제에 정치 논리가 본격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치권이 연금을 표와 연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은 처음부터 '더 내고 덜 받게'하는 재정안정화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 쟁점은 표를 가진 빈곤 노인들의 표를 얼마나 챙기느냐의 문제였다. 한마디로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긴축·감세정책을 주장하는 우파정당(한나라당)과 복지확대·부유세 도입을 당론으로 내세우는 좌파정당(민주노동간) 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연합도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정치인들에게 "4년간 4조원이면 된다는 아동수당도 예산 부족으로 못 준다면서…. 지각 없는 정치인들의 표밭갈이가 나라를 어떻게 망칠지 걱정이다"(김상균 서울대 교수)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