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역흑자가 계속되고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투자가 늘어났는 데도 한국의 단기외채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외화를 계속 들여온 탓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외화 자금 차입을 자제해 줄 것을 외국 은행에 요청했다. 단기 외채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부 변수에 의해 단기 외화차입금과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환율이 급등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화 환율 하락 기대감 여전

한국이 외화자금의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은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원화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조선사 등 국내 수출기업들은 달러로 계약한 수주물량을 즉각 원화로 바꾸는 '선물환 매도'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 국내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순매도 규모는 131억달러로 전분기(105억달러)보다 25% 가까이 늘었다. 조선사 등 수출업체들이 신규수주 물량을 대거 원화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 물량을 사들인 은행들은 환변동 위험을 없애기 위해 달러자금을 해외로부터 차입해서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환차익 노린 외환거래 급증

문제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들여오는 은행들의 외화자금이 외환시장에 쏟아져 원화 환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의 선물환 매도가 지속되면서 현ㆍ선물 환율 차이인 스와프 레이트(swap rate)가 떨어지게 되는데,지난 1월 -0.21%포인트에 그쳤던 외환 스와프 레이트와 내외금리간 격차는 3월에 -0.36%포인트로 확대됐다. 스와프 레이트와 내외금리 간 격차가 커질수록 해외에서 외화자금을 조달해 원화채권을 매입하는 '무위험 차익거래(arbitrage)'의 여지가 커지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외화차입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된다. 이는 단기 외채 유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제로 1분기 중 국내 은행 간 하루 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137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중 현물환 거래는 하루평균 72억5000만달러로 작년 평균에 비해 14.4% 증가한 반면 선물환거래는 하루 4억8000만달러로 20%,외환스와프 거래는 36억7000만달러로 35.4%,파생상품 거래는 23억달러로 34.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급반등시 혼란 우려

금융감독원은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은행들이 무위험 차익거래 등 환차익을 겨냥한 단기외화차입이 많다고 판단,무분별한 외화차입을 줄여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환율이 반등할 경우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일 원ㆍ달러 환율은 최근 3일 동안의 하락세에서 벗어나 전날보다 60전 오른 928원80전으로 거래를 마감하는 등 반등기미를 보이고 있다.

외화차입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 금감원의 조치를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받아들이는 시장의 시각도 있다.

만약 정부가 외환시장에 강력히 개입하거나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으로 급격한 엔캐리 트레이드 해소 등이 발생할 경우 국내로 들어온 외화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환율이 상승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국내에 유입돼 주식과 국채에 투자된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 외환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외환보유액이 2400억달러를 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외채상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외환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현승윤/박성완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