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저녁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근처 선술집에서 한경 생활경제부 기자들과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들려준 그의 상도(商道)와 주도(酒道)에 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경 기자들과 6시간 솔직토크
#술과의 인연
-소주 회사 사장하고 소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니 은근히 걱정되는데요.
"제가 더 걱정입니다.아군은 하나도 없고 적(?)들만 가득하네요."(선술집 한켠에 한경 기자 10명이 한 사장을 둘러싸고 앉았다)
-암 투병(대장암 3기) 끝에 기사회생하신 걸로 아는데 소주 마셔도 되나요.
"처음처럼은 물이 좋아서 괜찮습니다.소주 더 마시라고 하늘이 절 살려놓은 거 아닐까요."(모두 웃음)
-요즘도 술을 많이 드십니까.
"전 술을 잘 하는 편이에요.진로에 있다가 오비맥주로 갔을 때 그 회사 사람들이 맥주를 먹고도 혀가 꼬부라지는 걸 보고 의아해 할 정도였으니까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전국 각지의 도매상 사장들을 만나면 다들 '당신 암이었던 건 아는데 그래도 내 잔은 꼭 받으라'며 한 잔씩 주죠.이렇게 한 잔씩 받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이 마시게 되더라고요. 친구들은 '암스트롱'이라고 놀립니다."
-술 회사 사장으로서,주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분 좋고 건강 상하지 않을 만큼만 마시는 게 가장 좋은 '주도'겠죠."
#시골소년이 서울로 유학간 스토리
-고향이 충남 당진이신데 고등학교(휘문고)는 서울에서 나오셨네요.
"그렇습니다.2남2녀 중 장남인데 고교를 다니기 위해 혼자 서울에 와서 자취를 했죠.대대로 농사짓는 집안이라 장남은 농고에 진학해 농사일을 이어받는 게 보통이었는데 저는 서울에 있는 인문계 고교에 오게 됐어요."
-특별한 사연이 있나요.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중학교(당진중)를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은사님들께 아버지가 '수석턱'을 내는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이 '학교는 어디로 보낼거냐'고 물으셨나봐요. 아버지가 농고를 보내시겠다고 하자 교장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따지셨다더군요. 아버지가 워낙 시골분이시라 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 되는 걸로 아시고,다음날 제게 '고등학교는 서울로 가라'고 하셨지요."
-사범대를 졸업해 교사 자격증이 있으신 걸로 압니다.교직에는 뜻이 없으셨나보죠.
"교생 실습 나가서 같은 얘기를 네다섯번씩 돌아가며 하려니 너무 지겨워서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죠.또 술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데 당시엔 교사는 무슨 성직자처럼 살아야 되는 줄 알았어요."
#직장인론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굽니까.
"대우에서 처음 모신 김두일 부장(작가·필명 김성일)이 기억에 선합니다. 업무 시간 외엔 늘 책을 달고 사셔서 문학 경영 철학 등 어느 분야든지 모르는 게 없던 분이었죠.근데 이분이 신입사원이던 제게 '네가 낸 아이디어는 스스로 임원 결재를 받아오라'고 시키는 거예요. 다른 부하직원에겐 그런 일이 없었는데 제겐 유독 그렇게 하셔서 의아했어요. 혹시 결재받으러 들어가 임원이 하는 얘기를 놓칠까봐 당시 월급의 절반을 쏟아부어 일제 소형 녹음기까지 샀을 정도로 바짝 긴장되는 일이었지만,지나고 보니 그때 그렇게 당당한 자세를 길러준 게 지금까지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 임직원들에게 '노를 젓는 시늉만 하는 이는 반드시 배에서 내리게 하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면서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가려냅니까.
"기업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성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단기간에 실적만 놓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급하게 쪼면 영업사원들이 '밀어내기'(다음달에 발생할 예상 매출을 미리 당겨 장부에 계상하는 것)를 시도할 수가 있거든요."
-직장생활을 대우에서 시작하셨는데,술회사인 진로로 옮기게 된 계기는 뭐였죠?
"그건 사연이 좀 깁니다. 대우라면 당시엔 꽤 큰 그룹이었고,매출면에서 진로는 대우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회사였으니까요. 근데 당시 저와 절친한 상사 한 분이 진로로 옮겼어요. 진로가 대한조선공사(지금의 한진중공업) 인수를 준비 중이었는데 그 일을 진두지휘하러 간 거였죠.그분이 저한테 와서 저녁식사나 한번 하자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저녁 때 한번 가서 술 얻어먹고 온 것밖에 없었는데 회사(대우)에 벌써 소문이 다 났더라고요. '한기선이가 진로로 옮긴다더라.저녁 때마다 아예 그쪽으로 출근을 한다더라'하는 식으로요. 옮겨간 상사분이 중장비 영업에 밝은 저를 데려가고 싶어서 대우에 소문을 흘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하루이틀도 아니고 두 달 정도 계속 들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옮기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선공사 인수 작업을 챙기신 건가요.
"8개월간 매달렸지만 결국 인수엔 실패했지요. 그룹에선 고생했다며 이사대우로 승진시켜주더군요."
#술 마케팅의 귀재
-'참이슬''처음처럼' 등 술 히트작을 많이 내놓으셨습니다. 처음 성공시킨 작품은 '임페리얼'이라던데.
"네.당시 두산씨그램의 패스포트가 스탠더드 위스키 시장을 꽉 잡고 있었고,진로가 내놓은 로얄,VIP 등은 모두 합쳐 점유율이 8%도 안 됐어요. 그때 제가 '저 쪽(경쟁사)에서 안 내는 프리미엄급 12년산을 한번 내보자'고 주장해서 '임페리얼 클래식'을 냈어요. 반응이 괜찮더군요."
-단순히 제품만 좋다고 잘 팔린 건 아닐텐데요.
"물론이죠.12년산은 부드럽지만 단가가 비싼 게 흠이었죠.술 신상품은 값이 기존 제품보다 비싸면 시장에 진입하기 힘들어요. 당시 양주는 360㎖와 700㎖ 두 종류가 있었는데,임페리얼 클래식을 한 병에 어느 정도 담으면 일반 위스키 700㎖짜리와 같은 값을 매길 수 있는지 따져봤죠.520㎖로 하면 같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500㎖짜리를 내놓고 패스포트 700㎖보다 조금 싸게 출고가를 매겼습니다. 대신 양이 적어보이지 않게 하려고 병을 뚱뚱하게 만들었어요. 얼핏 보면 700㎖짜리와 구별이 안 가도록 말이죠."
-기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얘기 나온 김에 줄줄이 히트작을 내놓은 비결을 소개해주시죠.
"술시장은 유통구조가 일반적인 상품시장과 달라서 제품만 좋게 만들어선 안 돼요. 소비자들에게 그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를 알려야 함과 동시에 도매상,술집 주인 등 일선에서 술을 판매하는 이들에게 '팔아야 되는 이유'도 같이 드려야 합니다. '처음처럼'이 초기에 출고가를 낮춰 식당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마진이 돌아가도록 배려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면 됩니다."
-마케팅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형성하는 수단이 아닐까요. 기업이 펼치는 마케팅의 결과는 곧 '제품 이미지'입니다."
#'처음처럼' 성공 스토리
-암수술 뒤 회복 과정에서 '알칼리 환원수'에 대한 연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수술 끝내고 한 10개월 동안 집에서 백수생활을 했습니다. 다시 쓰러지면 안 되니까 건강에 각별히 신경썼죠.매일 마시는 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알칼리 환원수를 챙겨 마셨더니 회복에 도움이 되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 '처음처럼'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인체의 70%가 물로 돼 있다는데 소주는 80%가 물이에요. 좋은 소주는 물에서 판가름난다는 게 진로 시절부터 제가 갖고 있던 소신이에요. '처음처럼'이 '깨끗한 맛'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건 청정지역 강릉에서 길어 올린 물을 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시장점유율 10%를 넘겼을 때,직원들 포상도 있었나요.
"'처음처럼'을 내놓고 나선 직원들이 거의 매일 야근을 했어요. 그래서 직원들 부인 앞으로 편지를 써 케이크와 함께 보냈죠.남편을 회사에 빼앗겨버린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좌우명까지 '처음처럼'으로 바꾸셨다면서요?
"네.초심을 잃지 말자는 거죠.뭔가 꼬이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렇게 하면 금세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진로에 있다가 경쟁사인 두산에 오셔서 대박을 터뜨리셨는데,옛 직장 동료들한테 미안하진 않습니까?
"웬걸요,같이 일하던 이들이 지금도 눈에 밟힙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처음처럼'이 없었다면 진로가 하이트에 인수합병된 뒤 영업사원들은 옷 벗고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죠.어차피 맥주 영업이나 소주 영업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근데 우리가 바짝 따라붙으니까 진로 멤버들을 어쩌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요.물론 이건 순전히 저 혼자 하는 가정입니다만."(한 사장은 진로와 벌인 '마타도어 논쟁'을 의식한 듯 이 대목에서 사뭇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환갑되면 그만둡니다.
-재테크는 어떻게 하십니까.
"특별히 신경 써 본적 없어요. 일만 열심히 하면 회사에서 다 해주던 걸요. 능력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되죠 뭐."
-그럼 집 장만은 언제 하셨습니까.
"결혼하기 전부터 집은 있었어요. 아버지께서 장가가라고 논 팔아서 서울 방배동에 집을 사주셨는데 지금은 엄청 올라 그때 판 논의 10배도 넘게 살 수 있는 정도가 됐죠.원래 촌놈이다 보니까 언젠가는 방배동 집을 팔아서 다시 논을 사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욕심을 줄이고 귀농하는 게 지금으로선 제 희망사항이라고 할까요."
-임원 생활만 18년 정도 하셨는데,보기 드문 경우입니다.은퇴 시점은 언제쯤으로 잡고 계세요?
"그러고 보니 임원을 참 오래 했네요.근데 저는 그게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어차피 다 같은 월급쟁이인 걸요.환갑쯤에 물러나려고 합니다."
#난 이렇게 CEO한다.
-주류BG는 두산 내에서도 분위기가 좋기로 유명하던데,CEO로서 즐거운 직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비결은 뭡니까.
"특별한 건 없어요. 직원들이 각 부문에서 다들 경쟁사와 치열한 전쟁을 하느라 힘든데,회사에 돌아와서 만큼은 편안하게 해줘야죠.다른 건 못해도 적어도 CEO 챙기느라 고생시키는 것만큼은 하지 않으려 해요. 내가 직원들에게 맞춰주는 편이죠.방송국 인터뷰 가면 '혼자 오셨어요?'하면서 놀라요. CEO 수행할 시간에 나가서 더 잘하라는 뜻이죠.아니면 편히 쉬든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CEO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데 어떤 원칙이 있으십니까.
"저는 소위 '딸랑거리는' 사람을 무조건 멀리합니다.아부만 잘하는 사람이 제가 강조하는 '노 젓는 시늉하는 이'의 대표적인 케이스죠.자기 혼자 망하면 괜찮은데 이런 사람은 회사 경쟁력을 갉아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럼 어떤 후배가 예쁘죠?
"사장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직원이죠.창발적인 사고를 하는 젊은이들이 회사에 많이 들어오고 있어 고무적입니다.그래서 저는 이들이 아무때나 저를 만나 기탄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사장실 문을 항상 열어 놓습니다.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는 젊은 직원의 그림자가 보이면 '들어오라'고 하기도 하고요."
-어떤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으시나요.
"거짓말 같지만 저는 스트레스란 게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냥 늘 하는 일에 대한 생각과 고민 등은 그냥 삶의 일부일 뿐이죠.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스트레스가 되는 게 아닐까요."
-CEO가 스트레스가 없다고요? 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글쎄요.저는 '바보'가 되기로 했습니다.그래서 그런지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어요."
-지난해 한경이 주최한 글로벌HR포럼 때 오마에 겐이치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시던데요.
"아주 좋아해요.그 사람 책 다 읽었어요.아직 한글판이 안 나온 책까지 구해다 번역해가며 읽은 게 6~7권 정도 됩니다.그 양반이 갖고 있는 경영 혜안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처음 경영을 배울 때부터 오마에 겐이치의 책을 읽어서 그가 마치 내 스승 같은 느낌이에요."
-휴가는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요.
"정해진 스케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즐겨요. 계획이 없으면 차질도 없다'는 말 아세요? 차 막히면 그 근처에서 식사나 하면서 시간 보내다,다시 출발해 가다가 날 저물면 여관에서 자고 그러는 거죠.휴가 때까지 계획을 세우려고 들면 '쉼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업무가 되는 거죠.돈 있고 시간 있으니 그냥 발 가는 대로 떠나는 게 최곱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걷기만큼 좋은 운동은 없어요.여기 찬 만보계 보이십니까? 오늘은 1만67보 걸었네요.요즘 하루에 1만보 이상 걷기를 실천하고 있어요.아침에 헬스클럽 가서 7000보 정도를 걷고.그걸 못 했을 땐 저녁에 강남 서초 등 상권을 둘러보면서 만보를 꼭 채워요."
정리=차기현/사진=김병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