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은 일종의 위험물이다.

자칫 잘못하여 손해를 보기라도 하면 본인은 물론 돈을 빌려준 주체까지 한꺼번에 파산을 할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고 이 중에서도 돈장사를 하는 것은 한층 더 어렵다.

바로 은행업이 이런 분야이다.


고객이 맡긴 예금은 곧 남의 돈이다.

은행의 부채인 것이다.

이 부채를 가지고 은행은 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여 수익을 내서 예금이자나 은행원 월급도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수많은 위험에 노출이 되고 이러한 위험을 잘 관리해야만 계속적인 영업을 할 수가 있다.

이러니 은행을 가리켜 '위험물 취급 인가기관'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은행을 둘러싼 리스크는 실로 다양하다.

우선 대출을 준 돈의 원금과 이자가 훼손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데 이를 신용리스크라 한다.

또한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시장가치가 하락하여 손해를 볼 수 있는 리스크를 시장리스크(market risk)라 하고 직원의 실수 혹은 횡령 및 사고 등 각종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운영위험(operational risk)이라 한다.

그 외에도 법률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위험,결제와 관련한 결제위험,그리고 자산매각이 제대로 안되어 현금화시키기가 어려워지는 유동성 위험 등 실로 다양한 위험이 은행과 관련하여 발생 가능하다.

그런데 이 중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용위험이다.

대출과 관련하여 차주가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할 경우 은행은 치명타를 입는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 제일 먼저 가능한 것이 바로 대손충당금이다.

기대가능한 수준의 손실액수를 산정하고 이 돈만큼을 미리 확보해 놓는 것이다.

예상되는 손실에 대한 대비책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예기치 못한 손실도 얼마든지 발생가능하며 그 규모도 상당히 커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행에 있어서 최후의 보루는 무엇인가.

바로 자기자본이다.

은행의 자기자본이 충분하고 언제든지 동원 가능한 형태로 잘 보관되어 있을 경우 대출에서 손실이 나도 일단 자기 자본으로 메울 수가 있게 되고 이 경우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태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메우기 힘든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은행에 예금을 한 고객들이 동요하면서 대량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면 은행은 그걸로 끝이다.

손실이 안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실이 나더라도 이를 커버하고도 남을 충분한 자기자본이 있으면 고객은 안심하게 되고 은행은 계속 영업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1995년 베어링 은행은 직원의 파생상품 거래로 인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파산하였고 결국 1파운드의 가격에 ING 은행으로 인수되었다.

만일 이 은행에 자기자본이 충분하였더라면 간판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기자본은 예기치 못한 손실에 대한 최후의 보루가 되고 위험에 직면한 은행이 살아나는가 파산하는가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젤협약이라 불리는 은행 간 협약은 은행들로 하여금 필요한 최소규모의 자기자본을 산출하여 보유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국제 간 협약이다.

스위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의 주도하에 시행되는 협약이라서 이 협약에 의한 자기자본 비율을 BIS 자기자본비율이라고도 칭한다.

요체는 결국 은행이 자기자본을 일정 부분 이상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자기자본의 보유요건은 은행이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고객의 돈,곧 예금을 매우 위험하게 운용하는 은행 A가 있고 거꾸로 국채 중심으로 매우 안전하게 운용하는 은행 B가 있다고 하자.BIS 자기자본 비율을 계산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자산의 위험도이다.

위험하게 운용되는 자산은 가중치가 높고 안전하게 운용되는 자산은 가중치가 낮다.

자산규모에 위험가중치를 곱해서 나온 숫자,곧 위험가중자산을 계산할 때 A은행은 숫자가 높게 나오고 B은행은 숫자가 낮게 나온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이 위험가중자산대비 8% 이상의 돈을 자기자본으로 보유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금을 위험하게 운용하는 A은행은 필요한 자기자본액수가 커지고 반대로 안전하게 운용을 하는 B은행은 자기자본액수가 작아도 된다.

물론 자기자본 필요량이 크든지 작든지 두 은행 모두 이 비율을 충족한다면 일단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자본을 충분히 보유하여 예기치 못한 손실에 대비하는 것이 이 협약의 핵심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자본은 장사를 하지 못한 채 따로 떼어놓는 돈이라는 점이다.

필요 자기자본이 커질수록 장사 규모가 줄면서 은행이 이익을 내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따라서 자기자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자산을 안전하게 운용해야 하므로 은행들은 자꾸 안전위주로 가고 이 바람에 위험도가 높은 중소기업대출 같은 항목은 찬밥 취급을 받기가 십상이다.

게다가 이제 바젤 II(two)라 불리는 수정된 협약이 발효되면 은행이 보유해야 할 자기자본의 양은 한층 늘어난다.

원래는 신용위험대비 자기자본으로 출발한 후 시장위험대비 자기자본 요건이 추가되었는데 이제 바젤II에서는 운영위험대비 자기자본 보유 요건까지 추가되었다.

또한 필요자기자본을 계산하는 공식이 상당히 정교하고 다양하게 제시되고 은행이 기준을 만족시키는 방법에 선택권까지 주어짐으로써 이를 준수하는 것 자체가 매우 복잡한 업무가 되어 버렸다.

리스크를 없앨 수는 없는 것이고 리스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금융기관의 운명이라 할 때 이 리스크를 다루는 전략과 방법이 입자물리학처럼 복잡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