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군, 호킨스 대(對) 맥기 소송사건에 대해 설명해 주겠소?"

킹스필드 교수의 호명에 하트가 움찔한다. 로스쿨 1학기 첫 수업시간이어서 수업진행 방향이나 소개해줄 것으로 생각한 하트는 수업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 "그…그게, 실은 그 사건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킹스필드 교수의 질문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에 하트는 어쩔줄 몰라 쩔쩔매고….

20여년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TV시리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The Paper Chase)'의 한 장면이다.

물론 사랑얘기가 빠질 수 없다.

하트는 하필이면 킹스필드 교수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데…. 결국 그녀의 풋풋한 사랑과 격려,날밤을 새는 공부 덕분에 좌절을 딛고 좋은 학점을 따게 된다는 스토리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미국식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젖는다.

로스쿨 법안을 준비해온 우리 정부는 이 같은 '환상'에 '개혁'이란 포장까지 덧씌워 로스쿨 도입을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인 양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환상'을 걷어내면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은 판례 위주의 불문법 국가다.

매년 5만명 이상씩 변호사를 양산해내도 재판과 판결을 먹고 사는 변호사업계는 아무런 불평이 없다.

1000명도 버거워하는 우리와는 변호사에 대한 인식부터가 다르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남의 나라 제도를 선뜻 도입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와 같은 대륙법 체계이면서도 2004년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시행 중인 일본의 경험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선 지금 로스쿨 실험의 성공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해 로스쿨 졸업생들이 처음 치른 신사법시험의 합격률이 48.3%에 불과하자 누구보다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할 경우 무제한으로 인가를 내줘 로스쿨이 74개나 생겼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학생들로선 불만이다.

"70~80% 합격률 운운하더니 사기극이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신사법시험은 자본시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싼 등록금과 학원비도 로스쿨이 비판받는 한 요인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로스쿨 시행이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워주는 로스쿨이 아니었으면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합격생의 고백들도 이어져서다.

사실 우리의 로스쿨법안은 일본보다 더 미국식에 가깝다.

일본은 로스쿨과 법대 학부를 함께 둘 수 있게 했지만 우리는 로스쿨을 세울 경우 법학 학사과정을 둘 수 없도록 했다.

그런 만큼 고민해야 할 부분도 수두룩하다.

로스쿨 도입취지 중 하나인 '법조인력의 다양성 확보'는 이미 비법대 전공자의 사시합격 비율이 25%를 오르내려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법학교육을 정상화하고 엘리트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밤새 토론해야 하는 이유다.

로스쿨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의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김병일 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