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디 이처럼 명예로운 퇴직까지 생각해봤겠습니까. 모두 선후배 동료들 덕분이지요."

38년11개월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25일 명예퇴직하는 박찬욱 서울지방국세청장의 말이다.

1968년 9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해 특유의 성실함과 겸손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지난해 비고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세청의 '넘버3'인 서울청장에 오르는 '9급 신화'를 만들어낸 박 청장은 물러나는 소감마저 겸손했다.

박 청장은 40년간의 공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서울청장으로 승진했을 때'를 꼽았다.

그는 "9급으로 들어왔을 때는 꿈도 못 꿨다. 그런데 1급으로 승진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니 가슴이 벅찼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박 청장은 '일벌레'로 유명하다.

사무관 시절 일주일에 며칠씩 밤을 꼬박 새우며 펜대를 잡고 일하다 오른손 중지의 지문이 지워져 2005년 서울청 조사4국장 시절 미국에 입국할 때 지문을 못 찍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 '일벌레'인 그에게 퇴직 후 어떤 계획이 있는지를 묻자 "40년 세월을 달려왔다.

몇 달쯤 쉬면서 생각을 좀 정리해봐야겠다"고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그는 "모든 공무원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그동안 집사람과 해외여행을 한번도 못했다"며 "우선은 여행을 좀 다니고 사회봉사도 한 뒤 소일거리로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후배 직원들에게 "국세공무원은 공정한 과세도 중요하지만 세법에 따른 기계적인 과세보다 어려운 납세자의 형편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이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