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시를 21세기형 선진도시로 탈바꿈시킬 초대형 '복합단지 개발(mixed-use development)'이 잇따르고 있다.

'도심 속 미니도시','다중도시(멀티플시티)','콤팩트 시티'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복합단지는 최근 3~4년 새 전국에서 10여곳이 개발에 착수했거나 계획을 수립 중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국내 주거문화 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들 복합단지는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도심 곳곳에 건설돼 도시 경쟁력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요즘 국내 개발업체들이 단골 메뉴로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 일본의 록폰기힐스나 후쿠오카의 캐널시티,프랑스의 라데팡스,영국 버밍햄의 브랜들리 플레이스 등이 성공적 복합단지 사례로 꼽힌다.

미국의 주요 도시의 마천루타운 등도 대표적 사례다.

# 사업비만 수조원대 '매머드급'

도심 재개발구역이나 신흥택지지구의 핵심상업지역 등에 주로 개발되는 복합단지는 보통 사업 규모가 1조~4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다.

상업·주거·업무 기능이 한 곳에 들어서는 자족형 미니도시 형태로 계획되는 게 보통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주상복합시설을 갖춘 대형 건물 형태로 개발되는 게 대세였지만 요즘에는 업무시설과 공공시설까지 포함된 '직주근접형 도시형'으로 만들어진다.

국내에서는 1980~90년대에 개발된 서울 삼성동 코엑스,반포동 센트럴시티 등 1세대 복합단지가 있었다.

이들은 주거시설과 문화·공공편의시설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게 흠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에 초고층과 상업시설을 강조한 도곡동 타워팰리스,목동 하이페리온 등이 등장했지만 상업적 편의성만 보완됐을 뿐 문화와 직·주 근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계획되고 있는 복합단지는 이들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완한 3세대로 불린다.

해외의 모범적 성공사례로는 일본 도쿄의 록폰기힐스,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등이 꼽힌다.

개발형태는 민간개발업체와 금융권이 합작으로 개발하는 민간자체사업과 자치단체나 주공,토공 등 공공기관과 민간업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민·관 공동사업 방식이 있다.

민·관 사업의 경우 공공기관이 땅을 대고 민간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 사업착수한 곳만도 6곳에 달해

전문가들이 선진국형 복합단지로 인정한 곳으로 현재 사업에 착수된 곳은 6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업진척이 가장 빠른 곳은 부산의 센텀시티와 창원의 시티세븐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이미 주거시설 분양을 끝내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창원 시티세븐은 조만간 대형 상업시설을 일반에 분양하고 호텔 건설 등에 나선다.

올 들어서는 청주의 '지웰시티(15만9000여평)'가 주상복합아파트 2000여가구를 1차로 분양했고 하반기에 2차분을 선보이면서 개발에 착수했다.

송도신도시 국제업무단지는 국·내외 자본이 합작으로 개발하는 복합단지다.

주택공사와 SK건설 컨소시엄이 참여한 아산 펜타포트(1만7600평)에는 지상 66층 규모의 충남권 최고층 주상복합아파트,백화점,업무시설 등이 들어선다.

화성 동탄신도시 내 메타폴리스(2만9000여평)도 조만간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에 나설 계획이어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시가 3대 밀레니엄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센텀시티는 35만평의 단지 안에 주거·상업·IT·영상·관광 등을 섞은 미래형 도시로 개발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계획 수립단계에 있는 곳도 여럿 있다.

서울 용산구 철도정비창 부지개발사업,중구 을지로 청계천변 세운상가,뚝섬 등도 선진국형 복합단지를 표방하며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도 1조8000억원대의 복합단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 수요 무시한 단기 졸속개발 우려

국내 개발업체들와 공공기관이 경쟁적으로 개발에 나서고 있는 복합단지에 우려의 시각도 있다.

우선 무조건 '한국판 록폰기 힐스'를 내세우며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로 단기 개발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 추진 중인 복합단지의 경우 단지 구성이 엇비슷하다.

수조원대의 매머드 개발사업인데도 해당 프로젝트를 상징적으로 살려내는 독특한 개성이 엿보이지않고 '판박이 복합단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특성과 상업·업무·문화 수요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외국 사례에 지나치게 의존한 형태로 계획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산에 건설되는 복합단지나 수도권,충청권에 추진 중인 복합단지의 구성에 큰 차이가 없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백화점 등 상업시설,호텔,업무시설 등이 핵심시설이다.

주거시설을 분양하고 이에 대한 수익금으로 후속사업을 진행시키는 무모함까지 엿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