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 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

그저 좋았다.

무조건 좋았다.

엄마의 자궁 같은 어둠의 동굴,팝콘 냄새 진동하며 맞아주는 살아서 움직이는 그림자 불빛.현실이라는 밧줄에 묶인 처연한 영혼을 구해내려는 힘센 감독들을 만나는 기쁨.극장은,영화는,내게 도피처였고 위로처였고 꿈꾸는 집이었고 행복이 만발하는 낙원이었으며,스타라는 신들이 거(居)하는 신전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던가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보고 싶어서,옆집 언니 교복을 빌려 입고 콧물 훌쩍이며,허리우드극장을 드나들던 때 이후 주욱 영화는 반짝이는 도시의 등대처럼 여기저기서 나를 유혹했다.

생각난다.

늘 비디오로만 대했던 아비정전을 부산 영화제의 큰 화면으로 다시 보았을 때,청자의 어두움과 에메랄드의 투명함이 몸을 섞은 고단한 빛깔의 녹색 위로 맘보 스텝을 밟던 장국영은 내 가슴에 화마 같은 화인을 꾸욱 남겼었다.

게다가 포주였던 어머니를 만나고 오면서 몰래 탄 기차 위에서 제임스 딘이 흘리던 한 줄기 눈물.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남자의 눈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친구이자 스승인 영화 속에서 나는 삶을,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를,상처가 무엇이며,배신이 어떤 것인지 배워 나갔다.

'서클'이나 '욜' 같은 영화에서 우리가 말보다 먼저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고,마린 고리스의 '안토니아 라인'에서 남자 없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나부끼는 여성성을 꽉 껴안을 수 있었다.

영화는 내게,영화를 본다는 것은 내게,육체로 빚은 학교이자,그림으로 지은 집에서 공부하고 사고(思考)하고 꿈꾸고 커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영화를 애인으로 삼고 싶었다.

영화가 업(業)이 되게 하지는 말자고.그냥 바라보고 아끼는 관객으로 남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이 손 달랑 잡고 출가인지 가출인지 모를 도망을 결행하기로 했을 때,삼십이 조금 넘은 나이에 빈손으로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을 때,나는 깨달았다.

나란 사람은 영화 없이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영화없이 못사는구나.

영화 없이는 죽겠구나.

순순히 영화를 업으로 아내로 맞은 날.평론가에 당선한 날 떨리는 글씨로 숨겨둔 영화 책 한 쪽에 이렇게 썼다.

"비로소 그녀가 결혼하자고 한다." 내 인생의 닻을 내리고 극장이라는 항구에 정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제였을까,영화가 내게 온 날은.파블로 네루다의 시처럼 영화가 내게 왔다.

가슴에서 돋아났고,발밑에서 솟아났고,귀와 눈에서 반짝거렸다.

그러므로 'thank you for the movie!' 감사한다.

국이 되고 밥이 되고 학교가 되고 자궁이 되었던 빛의 제국에 대해.사라지지 않은 내 인생의 등불,영화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