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보험사들이 마침내 증시에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비상장 회사라는 핸디캡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기업 공개를 통해 자본 시장에 떳떳하게 입성하게 된 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생보사 상장 허용은 국내 생보사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상장 허용은 국내 생보산업뿐만 아니라 금융산업 전체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보험사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생보사 상장 길을 터 준 것은 바람직한 조치라고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생보사의 자본 확충이 쉬워져 금융의 대형화·겸업화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뒤늦게나마 쫓아갈 수 있게 됐다.



생보업계가 지난 18년 동안 줄기차게 상장을 요구한 것은 필요한 때 증시에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생보 산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장기 투자 사업의 성격이 짙다.

실제로 삼성 교보생명 등은 회사가 설립된 지 25년 이상 지난 뒤에야 누적 손실을 털어낼 수 있었다.

웬만큼 자금력이 있는 대주주조차 우량 생보사를 키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부실 금융 계열사에 돈을 퍼 주는' 일이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무려 15개 생보사가 문을 닫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막강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세계 유수의 보험사들은 국내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했다.

2000년 5%대에 머물던 외국계 생보사의 시장 점유율은 20%를 넘어섰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과거 18년 동안 국내 생보사들이 상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생보사들의 시장 점유율이 10년이 채 안 되는 사이 20배가량 확대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스토리는 이제 옛 이야기로 남게 됐다.

수익성,지분 분산 요건 등 기업공개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누구든 상장할 수 있다.

주식 시장에서 기관투자가와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모 발행해 얼마든지 자본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자본 확충의 물꼬를 튼 생보업계는 대형화·겸업화라는 국제 금융 흐름을 쫓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화·겸업화를 위해서는 자체 성장으론 부족하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외적 성장이 동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주식 시장을 통한 자본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삼성생명이 상장하면 주가가 80만원을 웃돌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발행 주식 수가 2000만주인 점을 감안하면 시가 총액은 16조원.증시에서 20%의 유상 증자만 해도 3조원의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용수 보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생보사들이 자본 확충과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다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업 공개를 통한 생보사 경영의 투명성 제고,지배구조 개선 등의 효과도 기대된다.

남궁훈 생명보험협회장은 "상장은 자본 시장에서의 자본 확충이라는 측면과 함께 기업 경영을 일반 투자자(주주)에게 낱낱이 공개한다는 의미도 크다"며 "국내 보험사의 경영 투명성 제고와 리스크 중심의 경영 문화 등 선진 경영문화가 정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 소비자들은 보험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잣대가 넓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삼성생명 등 초우량 주식이 증시에 공급됨으로써 자본 시장도 한층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김석규 교보투신 사장은 "국내 증시에 블루칩의 신규 공급이 한동안 멈췄다"며 "생보사 상장으로 주식 투자자들은 또 다른 투자 대상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증권사를 투자 은행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자본시장 통합법이 제정된 데 이어 생보사 상장 허용으로 인해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보험·증권 산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