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 '일득록(日得錄)'엔 이런 말이 나온다.

'경들에겐 큰 병통이 있으니 일이 생기면 문득 요란하고 어지럽게 하고 일이 없으면 곧 편하고 게을리하는 것이다.

천하의 사변은 무궁해 미리 강구할 순 없어도 일이 없을 때 이해하기를 일이 있을 때처럼 한다면 일이 생겼을 때 달려들어 어지럽게 하진 않게 될 것이다.'

관리란 늘 비슷한가. 출산율이 1.6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산아제한을 외치다 급기야 세계 최하를 기록하자 큰일났다며 법석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육아휴직 수당을 준다,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준다,출산장려금을 준다,건강보험료를 지원한다 등 그야말로 난리다.

심지어 열 번째 아이를 낳으면 3000만원을 준다는 곳까지 등장했다.

길 가는 젊은 여성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라."열 명 낳으면 3000만원 준대.셋째를 낳으면 아파트 분양받는 데 유리하대.낳아볼래?" 기왕에 셋 이상 낳은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 반색할지 모른다.

하지만 육아비용도 비용이요,맡길 곳이 없어 하나 낳기도 겁난다는 판에 축하금 조금 주고 한 달에 몇 만원 보태준다고 아이를 더 낳을 것이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다.

지난해 고위공무원 변호사 의사 교수 등 고소득 전문직에서 발생한 22만2000개의 신규 일자리 중 69.4%가 여성 몫이었다는 발표도 나왔다(통계청).

이런 자료도 있다.

'2005년 서비스업 매출은 2001년보다 28.8% 증가했고(1221조994억원),종사자는 13.0% 늘어났다.

특히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단 임시ㆍ일일 종사자가 2001년보다 54.6%나 급증,비중도 8.9%에서 12.2%로 늘었다.'

실제 유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종사자,특히 '현장 근로자'는 거의 비정규직 여성이고 연봉 역시 1인당 GDP에 못 미친다.

정규직이라고 해도 교대 근무가 대부분이다.

주 5일제라지만 주말에 쉴 확률은 극히 낮고 밤샘 근무도 허다하다.

출산휴가 90일 및 육아휴직제 등은 죄다 그림의 떡이다.

"무슨 소리냐.우리 기관(회사) 여자들은 꼬박꼬박 챙기는데" 할지 모른다.

하지만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여성취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육아부담',직장 내 남녀 고용차별 관행 1위는 '승진기회 '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디서든 살아남자면 야근은 다반사요,빠지기 힘든 회식도 잦다.

잘 나간다는 여성 치고 기혼을 찾아보기 힘든 건 법과 현실의 괴리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경북 영양군에선 2005년부터 출산장려금을 줬지만 2000년 145명이던 신생아가 2006년 93명으로 줄었고,전국적으로도 몇 년 동안 온갖 대책을 쏟아냈지만 2005년 출생아는 2000년보다 첫째는 24.9%,둘째는 37.5%나 감소했다고 한다.

일회성 푼돈 지급이나 셋째부터 어떻게 해주겠다는 식의 선언적 지원책 위주의 출산장려책은 재고돼야 한다.

실효도 없는 계획을 짜놓고 돈을 얼마 나눠줬으니 목표를 달성했다는 식으로 평가한다면 출산율이 1.6 이하로 내려간 줄도 모르고 가족계획 성과를 목표 달성으로 여겼던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진정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아이 낳는 데 특별한 '용기'와 '신분'이 필요하지 않도록 해주는 게 먼저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