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한 번 얻어먹으면 다음에 내가 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의미는 좀 다르다.

친구가 점심값을 내주었지만 친구만 비용을 치른 것이 아니다.

친구를 따라 점심을 먹으러 가느라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면 그것도 일종의 비용이다.

공짜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결코 공짜가 아니었던 셈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회비용'이라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차선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에 따른 편익과 비용을 계산한다.

편익을 계산할 때 가시적 효과뿐만 아니라 잠재적 효과까지 염두에 두듯이 비용을 따질 때는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을 연구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대학입시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 및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정책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다.

3불정책의 편익과 기회비용을 생각해 보자.대학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라 회원재(클럽 Goods)에 가까운 사적 재화의 성격이 강하다.

회원(해당 대학교 학생)으로서의 자격(일정수준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원하는 클럽(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데다 우수한 교육을 받아 생산성이 높아질 경우 그 보상은 학생 개인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교육의 공공성은 의무교육과정인 초등 및 중학교 과정에서나 찾을 수 있다.

대학교육서비스가 사적 재화라면 시장원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생은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고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게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는 대학입시를 시장원리에 맡기면 실패한다며 통제에 가까운 개입을 해왔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부담·사교육 과열 및 교육기회의 불균등 등을 막기 위해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3불정책의 편익 혹은 목표는 학습부담의 적정화, 사교육 억제 및 교육기회의 균등화에 있는 셈이다.

이 정책목표는 과연 달성되고 있는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의 학습부담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본고사가 있을 때는 고등학생의 고액과외가 주로 문제가 되었으나 이제는 초중학생까지 영어와 논술 등 학원수강과 과외에 내몰리고 있다.

사교육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본고사가 금지된 마당에 수험생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신과 수능성적이 좋아야 하고 논술도 잘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가 사교육비로 지출한 돈은 2004년에 7조9600억원으로 2000년의 4조50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결국 당초에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3불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3불정책의 강행을 공언하고 있다.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큰 3불정책이 지속될 경우 기회비용은 얼마나 될까? 3불정책의 기회비용은 시장원리를 외면한 대가로 설명할 수 있다.

공공재가 아닌 사적재화인 대학입시에 대한 인위적 규제는 시장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시장의 반발은 사교육비와 유학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교육수지 적자는 44억달러(약 4조원)에 달하며 2011년에는 100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용은 현금이 나가거나 언론에 자주 보도되어 눈에 잘 띄는 비용들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의 경우 당장 현금이 들지는 않으나 미래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더 큰 문제다.

본고사를 금지하고 고교 간 실력 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수한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며 균등한 교육기회의 제공에 위배된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하여 신성장 동력을 확충해야만 경제의 활로를 열고 경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기여입학제의 경우도 정원 외로 선발한다면 다른 학생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하지 않고 소득재분배와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불정책의 늪에 빠져 미래의 빌 게이츠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천문학적인 수치로 날아올 수 있다.

3불정책의 편익과 기회비용을 계산해 본 우리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안순권 한경硏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