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鍾 範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3불(不)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의 이해당사자는 학생과 대학만이 아니다. 대졸자를 채용하는 기업도 주요 당사자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제대로 발굴해서 잘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우리 기업이 언제부터인가 대졸자 신규채용에 거는 기대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대졸자를 채용한 뒤 키우는 데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경력자 채용을 중시하기도 한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예전에는 대학과 전공,그리고 학점을 보고 채용하면 크게 실패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불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동안 기업들은 출신대학을 통해 두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하나는 고교 졸업 당시 해당 학생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대학이 갖고 있는 인재양성 능력이다. 학생이 고교졸업 당시 갖고 있는 지적(知的) 능력과 함께 이 능력이 대학 4년간 어느 정도 향상됐는가를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출신대학이나 전공보다는 영어성적과 면접을 중시하고 있다. 외국대학 출신이나 자격증을 선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출신대학을 보고 지적능력 수준을 판단하기 힘들어졌고 또 대학교육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각 대학이 적성에 맞는 학생을 잘 선발해서 경쟁력 있고 특성화된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의 신뢰가 깨지게 된 데에는 3불정책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대학은 좋은 학생을 뽑아 잘 가르쳐서 배출함으로써 기업과 국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자 한다. 그런데 수능(修能)과 내신(內申)으로만 획일적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고,더구나 출신고교에 대한 차별성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은 한마디로 대충 뽑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잘 뽑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잘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다. 전공에 대한 적성도 열정도 없는 학생들을 모아 전공교육을 잘해서 기업과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 역시 힘들어 한다. 수능에서 한두 문제 실수 여부가 대학을 결정짓고,어렵게 대학에 들어와서도 전공 공부보다는 영어공부에,그리고 면접준비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정도로 취업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3불정책은 학생-대학-기업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폐지돼야 한다. 첫째 대학으로 하여금 학생을 뽑는 자유를 갖도록 하자. 대학이 선발에서 자유를 갖게 되면 굳이 본고사를 부활할 필요가 없어진다. 몇몇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본고사를 보기보다는 학과별로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해 학과에 최대한 적성이 맞는 학생을 선발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졸자를 뽑는 기업과 국가도 적성에 맞는 학생을 잘 선발해 잘 가르치는 대학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대졸자를 대상으로 하는 표준화된 전공능력시험을 실시해 기업들이 이 시험성적을 전공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게 하자. 이 시험은 일류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도 그리고 지방대학 졸업자라도 원하는 기업에 채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대학으로 하여금 전공교육을 내실화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나아가 고교시절 학업에 소홀했던 학생들에게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셋째 입학 전형을 전면 자유화하게 되면 고교등급제 금지는 의미가 없어진다. 대학당국의 다양한 선발기준 중에서 출신 고교도 하나의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교별 등급을 책정하지 않더라도 대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교별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축적된다. 다만 일률적으로 고교별 수능성적을 갖고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교정보와 그 고교출신 학생실적 정보들을 갖고 차별화할 것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고교교육도 획일성에서 벗어나서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3불정책이 학생 간 그리고 대학 간 평등을 보장한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학생,대학,그리고 기업을 3불정책의 덫에서 구해내자.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성장동력이 가동되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