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재보선 참패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지도부 사퇴여부를 둘러싼 비난전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고,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 측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 간 책임론 공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국면이다. 일각에선 대선도 치르기 전에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 부재'라는 독특한 정치구도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유권자는 한나라당의 오만함을 혹독하게 심판했고,동시에 열린우리당의 무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40 대 0'이라는 재보선 불패신화를 이루며 승승장구한 한나라당의 경우 이번 선거의 패배로 한때 50%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이 '거품'이었음이 입증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으로 야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몸체를 숨기자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독주에 식상해했고,선거직전 터진 공천잡음과 돈거래 파문은 '부패정당'이미지를 상기시켜줬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두 대선주자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두 후보 진영은 지지율이 70%에 달하자 대세론이란 '오만'이 스며들기 시작해 연초부터 '상대 끌어내리기'식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한나라당 내에는 정당이 3개 있다. 이명박당,박근혜당 마지막이 한나라당이다","지지율 70%는 착시다"는 식의 경보음이 울렸음에도 이들에겐 '우이독경'에 불과했다. 결국 두 주자가 전국을 돌며 한나라당 지지를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애써 외면한 것이다.

그렇다고 범여권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일까.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었지 민심이 범여권을 향하지는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선거 후 나타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율은 떨어졌으나,빅2에 대한 애정(?)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범여권 측은 "현재 빅2 지지율은 의미가 없다. 여권의 단일후보만 나오면 이번 대선도 2002년처럼 2% 승부가 될 것"이라며 대역전론을 역설하고 있다. 10년 집권을 경험한 탓인지 '한나라당이면 자신있다'는 말을 주술(呪術)처럼 되뇌이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대선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세론의 이인제 후보를 꺾으며 여권 후보가 된 노무현 후보는 수개월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더 나아가 대선 1개월을 앞두고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게임까지 성사시키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범여권은 '후보단일화=필승론'에 안주하며 오히려 관전자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나라당은 2004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범여권 역시 2002년 당시 민주당이 보였던 치열함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번 대선은 재보선 결과에 대해 어느 쪽이 정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독이 약 될지,약이 독 될지'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관중(管仲,기원전 약 724~645년)은 "오늘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추어 보고,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를 살펴보아라. 만사가 발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김형배 정치부장 k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