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할만 먹어라/세상 음식 8할에 꿈을 2할 섞어라/삼복을 넘기시는 팔순의 아버지/꿇어앉은 아들 여섯 고명딸 하나/지금이 모두 전성기라는 걸 알아라/따로 행복이 없다는 걸 알아라.'
앞의 것은 19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작가 키플링의 글 '만약에' 뒷부분,뒤의 것은 박해선씨의 시 '말씀' 전문이다.
아버지의 자식 걱정과 사랑은 이처럼 동·서양 따로 없이 간절하다. 뿐이랴 영화 '아마겟돈'에서 아버지는 딸을 위해 사윗감 대신 죽는다. '존 큐'에선 소심한 아버지가 심장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려고 병원을 점거한 채 인질극을 벌인다. '효자동 이발사'의 아버지는 고문 당해 걷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몰래 대통령 영정사진 속 눈을 긁어낸다.
'괴물'에선 늙은 아버지가 IQ 낮은 아들을 위해,그 아들은 자기 딸을 구하려 물불을 안가린다. 이들 영화의 성공 덕인지 이혼 증가로 인한 아버지 부재시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올 봄엔 부성애 영화가 쏟아졌다. '우아한 세계''눈부신 날에''날아라 허동구''마이 파더''아들''귀휴' 등 10편에 가깝다.
TV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아침·저녁극의 아버지 모두 이혼해도 자식 사랑은 끔찍하고,'거침없이 하이킥'의 아버지는 평소 식충이라고 구박하던 아들이 직장에서 윗사람 구두를 닦으려는 걸 보자 당장 그만두라며 끌고 나온다. 자식 일이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건 어떤 아버지나 똑같은 모양이다.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이 아들 때문에 영화같은 일을 벌였다는 게 그것이다. 존 큐의 인질극 저리 가라인 셈이다. 자식 눈두덩이 찢어졌는데 어느 아버지가 분하지 않으랴. 그러나 자식 위해 목숨도 거는 이땅 보통 아버지 같으면 술집에서 시비를 벌인 내 자식 야단부터 쳤을 것이다. 자식 역시 부모가 걱정할까 봐 실수로 다쳤다고 둘러댔을 테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