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고액권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연내 도안 선정과 행정절차를 마친 뒤 2009년 상반기 중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액권 발행 계획이 정해진 만큼 보다 주도면밀한 준비작업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대책 마련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 경제 여건에서 고액권 발행은 상당한 당위성을 갖고 있다.

1973년 1만원권 지폐가 발행된 뒤 34년 동안 경제규모는 150배 이상 커졌고 물가가 12배나 올랐는데도 1만원권이 계속 최고액권으로 통용(通用)되면서 상거래 불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1만원의 가치를 1973년 물가로 환산하면 800원에도 못미칠 정도이니 현행 고액권 기준은 크게 낮은 것이다.

이처럼 최고액권의 구매력이 떨어진 바람에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지폐처럼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자기앞수표는 유통기간이 10일 정도에 불과한 데다 위조도 쉽고 비용도 많이 든다.

대신 고액권을 만들면 수표발행 및 취급,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개인신상의 이서(裏書)에 따른 불편을 없애는 등 편의성이 높아질 게 틀림없다.

한은은 이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비용만 연간 3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 못지않게 여러 부작용 또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인플레 가능성이 우려된다. 고액권은 큰 돈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각을 무디게 해 거래단위가 커지고 물가상승을 부추길 게 뻔하다. 고액권 유통으로 무자료거래와 세금 탈루가 용이해지고,뇌물과 음성적 정치자금 등 불법거래의 단위가 커져 부패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고액권 발행에 앞서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확실한 대책수립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인플레 유발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가관리 대책 마련과 함께 불법적인 현금거래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補完)도 당장 시급한 일이다.

이번에 이성태 한은 총재는 화폐 액면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한은의 연간 결제액이 조(兆)단위를 넘어 이름도 생소한 경(京)단위로 넘어간 지 오래다. 이런 화폐단위로는 우리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지출도 증대될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