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輝昌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경제의 개방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국제투자가 더욱 중요한 전략적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합의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이름에는 무역이라는 단어만 들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제투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외국기업의 한국투자를 주로 금액으로만 평가하고 투자의 질(質)적인 면을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국투자유치 주관기관은 실제로 일정 금액의 정해진 목표에 따라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투자유치에 관한 정부 부처의 시각이 서로 달라 정책의 혼선을 빚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산업자원부에서는 투자유치를 촉진시키려 하고 재정경제부에서는 외환보유고가 너무 많아 투자유치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모두 국제투자를 돈의 흐름으로만 보는 매우 좁은 시각 때문이다. 국제투자는 돈의 흐름뿐만 아니라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주고,필요한 기술을 이전(移轉)해 주며 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선진화에 기여한다.

필자는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를 심도 있게 수행하고 있는데 투자유치 정책은 경제상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는 '자본유치형'이다. 외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후진국에서 실시하는 정책이다.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상태에서 중요한 원자재나 생활 필수품 등에 대한 수입대금을 지불하거나 산업자금을 구하기 위해서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경우다.

둘째는 '경기활성형'이다. 자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내 실업문제,소비위축 등을 해결하면서 경기를 진작시키려는 정책이다. 최근 일본의 정책이 이에 해당된다. 이 경우에는 유치금액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외국기업을 끌어 들여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는가를 주로 평가하게 된다.

셋째는 '전략적 투자유치형'이다. 영국의 경우 80년대에는 '경기활성형'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전략적 투자유치형으로 바뀌었다. 현재 영국 투자유치정책의 초점은 산업구조를 고도화(高度化)하는 데 필요한 산업과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사,연구개발(R&D) 센터의 유치에 비중을 둔다. 따라서 단순한 투자금액이나 건수가 아니라 투자기업의 성격이 중요하다.

마지막 단계는 '비즈니스 허브형'이다. 이 단계에서는 특정한 산업 및 기업을 선택적으로 집중해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경영환경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기업 스스로 효율적 시장기능에 따라 드나들 수 있는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경영환경뿐 아니라 생활환경도 세계 최고 수준이 돼야 한다.

또한 자기 나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도 연결해서 포함시켜야 한다. 싱가포르는 주변국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효율적으로 연결시켜 '성장 삼각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물론 싱가포르도 아직 완벽한 의미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와 관련해서 세계 최고수준에 있다.

이상의 네 가지 유형에서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 정부는 마지막 단계인 '비즈니스 허브형'을 표방(標榜)하면서 실제로는 후진국 수준의 첫째 단계인 '자본유치형'이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조된 '자본유치형' 정책이 지금은 오히려 달러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도 아직까지 이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적절한 유형은 세 번째 단계인 '전략적 투자유치형'이다. 사실 산자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을 지정하고 있지만 과연 정교한 분석에 의해 지정된 분야인지 엄밀히 따져 보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투자유치를 실제 평가에 반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 관련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유치 담당관이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가 큰 투자 유치에 더욱 노력할 수 있도록 현재의 평가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