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마다 판결이 들쭉날쭉해 '고무줄 형량'이라고 비난받아온 법원의 양형 기준이 새롭게 마련된다.

이에 따라 두산 SK 등 거액의 횡령·배임이나 분식회계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아온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며 1,2심 선고형량도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일 대법원청사에서 출범식을 갖고 양형 기준 논의에 착수했다.

양형위는 2009년 4월까지 2년의 시한 동안 주요 범죄의 양형 기준을 마련,판사에 따라 각각 다른 기존의 불합리한 양형 편차를 해소할 계획이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부패ㆍ성폭력ㆍ소년ㆍ환경ㆍ선거 범죄와 실무상 양형 기준 설정이 필요한 살인ㆍ사기 및 교통사고 범죄 등에 우선적으로 기준이 마련될 전망이다.

양형 기준은 판사에게 권고적 효력을 갖는 데 그치지만 이와 달리 판결할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형량 선고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대법원에 따르면 2003∼2006년 전국에서 1심 재판을 받은 피고인들 절반 이상이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이들 가운데 48%가량이 2심에서 감형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형량파기율이 23.9∼29.0%로 1심 재판 100건 가운데 30% 정도는 2심에 가서 형량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이는 미국(파기율 0.9∼1.7%) 일본(1.5∼1.8%) 등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그만큼 판사의 판결이 제각각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양형 기준이 일반에 공개되면 누구라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어떤 형량이 선고될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비싼 수임료를 주고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형량이 낮아지는 '전관예우' 현상이나 '무전유죄 유전무죄' 논란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도 거액의 횡령·배임·탈세·분식회계 등 경제범죄에 대해 일반인과 똑같거나 혹은 미국식으로 가중 처벌하는 판결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누가 참여하나

13인으로 구성된 양형위의 위원장에는 '국민의 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낸 김석수 변호사가 선임됐으며 박송하 서울고법원장,유원규 서울서부지법원장,서기석ㆍ성낙송 서울고법 부장판사,홍경식 서울고검장,황희철 대검 공판송무부장,이경재ㆍ조건호 변호사,하태훈 고려대·한인섭 서울대 교수,신용진 MBC 보도본부장,남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등이 포함됐다.

김 위원장은 "수십년간 지속된 관행을 바꾸는 일인 만큼 먼 길을 바라보되 주춧돌을 한 장씩 확고하게 쌓아간다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선고 형량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과 전관예우 의심을 사는 현상이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사법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양형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