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행이 나타나면 경영자들은 조급해진다. 새 기술,새 디자인,새 표준이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유비쿼터스 웹2.0 위키노믹스 UCC(사용자제작콘텐츠:User Created Contents) 등의 새 용어가 언론을 장식할 때마다 불안해진다. "우리도 UCC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쟁업체들이 먼저 나서면 어쩌나 걱정이 커간다. 조바심을 갖게 된 최고경영자는 간부진에 '검토 지시'를 내린다. 이 한마디로 회사 각 부서엔 비상이 걸리게 돼있다.

수많은 경쟁자들이 흘린 피로 흥건해진 '레드오션' 시장이 만들어지는 논리는 이처럼 간단하다.

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경영자들의 이런 조바심은 사실 참 좋은 것이고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처럼 새로운 트렌드가,그것도 세상을 바꿀 만하다고 평가받는 추세가 자주 나타나는 시대일수록 한번에 망할 위험도 커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종합유선방송(CATV)이 출범할 때나,1990년대 후반에 PCS 등 새 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할 때도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주인은 바뀌고 시장도 재편됐다. 기회를 잡은 회사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시장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유행은 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전에는 미리 뛰어드는 업체가 누릴 수 있는 선점자이익(first mover advantage)이란게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환경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자칫 예전의 속도로는 '막차'를 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시대에는 그래서 선점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탄탄한 비즈니스모델을 갖춘 후발주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UCC를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 관련 회사들이 모두들 UCC가 대세라며 달려드는 바람에 전혀 관련 없는 업체까지 UCC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혈안이다. 예전에 게시판으로 받던 고객소감을 동영상으로 받는 소극적인 것에서부터,아예 소비자를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새 사업까지 논의가 한창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바로 과연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가 될 것이냐를 판단하는 일이다. 특히 '과연 돈이 될 것이냐'를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다음에라야 새 기술,새 유행도 사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갖춰야할 조건은 세 가지다. 주인공(character)이 명확해야 하고,주인공들이 참여할 동기(motive)가 분명해야 하며 이들 간에 서로 가치를 교환하는 구성(plot)이 성립돼야 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마치 좋은 이야기처럼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조안 마그레타 박사)

UCC를 보자. 우선 주인공들은 많다. 자기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동기도 있다. 자랑도 하고, 이름도 날리고 해당업체에서 게재료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가는 '돈 이야기'의 구성은 어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로 인해 광고수입을 늘릴 수 있는 일부 포털사이트나 언론사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막상 UCC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전략의 핵심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마이클 포터)이란 조언을 믿고 일정한 선을 지키는 경영자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대다. 때로는 시장이 성숙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용기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