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밥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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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엔 고기를 맛보기가 쉽지 않았다. 명절이나 결혼 등 대사가 있을 때 돼지를 잡아 이웃끼리 나눠 먹는 게 고작이었다. 생선도 마찬가지여서 소금에 간한 고등어와 갈치,꽁치를 맛보는 정도였다. 오로지 밥이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다.
밥그릇을 보면 실감이 난다. 지금의 공기와는 비교가 안된다. 그 큰 밥그릇에 밥을 가득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그릇 위에 넘치도록 밥을 담는데,위에 담은 밥의 양은 안에 담긴 양만큼이나 된다. 소위 '고봉(高捧)밥'이라 하는 것이다. 이 정도를 먹어야 힘든 농사일을 하고 산에 다니면서 땔감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밥이 곧 보약이었던 셈이다.
김지하 시인이 오죽하면 '밥'을 일컬어 '하늘'이라고까지 예찬했을까 싶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하늘을 몸속으로 모시는 것/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일찍이 맹자도 "백성들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고 말했었다.
먹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던 당시,우리 조상들에게나 해당된 것으로 알았던 밥이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엊그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쌀밥이 30~40대 국민들의 칼로리 섭취 순위에서 1위로 밝혀졌다. 아직도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얘기다.
'밥힘'은 한국인의 오랜 '쌀밥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쌀은 주곡이면서 식생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에 이르는 긴 기간에 걸쳐 장마와 태풍,그리고 땡볕을 견디면서 경작을 하기에 쌀에 대한 애착은 어느 작물보다도 남다르다.
새삼 밥이 소중하게 느껴지면서 온몸으로 그 영양분이 퍼져가는 듯하다. 쌀 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민들에게도 밥심이 한가닥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밥그릇을 보면 실감이 난다. 지금의 공기와는 비교가 안된다. 그 큰 밥그릇에 밥을 가득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그릇 위에 넘치도록 밥을 담는데,위에 담은 밥의 양은 안에 담긴 양만큼이나 된다. 소위 '고봉(高捧)밥'이라 하는 것이다. 이 정도를 먹어야 힘든 농사일을 하고 산에 다니면서 땔감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밥이 곧 보약이었던 셈이다.
김지하 시인이 오죽하면 '밥'을 일컬어 '하늘'이라고까지 예찬했을까 싶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하늘을 몸속으로 모시는 것/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일찍이 맹자도 "백성들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고 말했었다.
먹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던 당시,우리 조상들에게나 해당된 것으로 알았던 밥이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엊그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쌀밥이 30~40대 국민들의 칼로리 섭취 순위에서 1위로 밝혀졌다. 아직도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얘기다.
'밥힘'은 한국인의 오랜 '쌀밥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쌀은 주곡이면서 식생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에 이르는 긴 기간에 걸쳐 장마와 태풍,그리고 땡볕을 견디면서 경작을 하기에 쌀에 대한 애착은 어느 작물보다도 남다르다.
새삼 밥이 소중하게 느껴지면서 온몸으로 그 영양분이 퍼져가는 듯하다. 쌀 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민들에게도 밥심이 한가닥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