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의 기세가 무섭다.

경기둔화 우려 속에서도 다우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경기둔화 경고로 기대 심리가 낮아진 상태에서 기업실적과 일부 경제지표가 예상을 웃돌고 유동성이 끝없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세장은 우려의 벽(Wall of Worry)을 타고 오른다'는 뉴욕증시의 격언이 딱 맞아 떨어지는 형국이다.

이번 강세장을 연출한 가장 큰 주역으론 뭐니뭐니해도 낮은 기대 심리가 꼽힌다.

지난 2월 말 '중국발 쇼크'로 글로벌 증시가 휘청거리자 월가에서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경기침체 경고와 기업실적 둔화 전망이 더해지면서 비관론은 더했다.

그러다보니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 심리는 한껏 낮아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들어 기대 심리를 웃도는 호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선두에 선 것은 1분기 기업실적.지난 14분기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던 미 500대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지난 1분기엔 3.3%로 급속히 둔화될 것으로 당초 전망됐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아니올씨다'였다.

500대 기업 중 지난 1일까지 실적을 발표한 370개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7.9%에 달했다.

나머지 기업들까지 합칠 경우 순이익 증가율은 9%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잘하면 15분기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렇다보니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은 1.3%로 뚝 떨어졌고 3월 중 기존주택 판매량이 18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악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업실적 발표가 마무리될 즈음해서는 경제지표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미 제조업의 현황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공급자관리협회(ISM)의 4월 제조업 지수는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일 발표된 공장주문 증가율은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주택경기가 여전히 침체국면을 걷고 있지만 제조업 경기는 회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또 지난 3월 중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도 보합세를 유지해 인플레이션 우려감도 약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증시에 유입되면서 강세장을 연출하고 있다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동성 유입엔 역설적으로 주택경기 침체가 도움이 되고 있다.

주택경기가 바닥을 헤매면서 부동산에 들어있던 돈이 썰물처럼 빠지고 있다.

작년 투자용으로 거래된 주택이 28.9%나 줄었을 정도다.

이 돈은 고스란히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FRB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하다보니 여유자금은 고수익을 좇아 사모펀드나 헤지펀드에 몰려들고 있다.

이들 펀드는 대규모 기업인수합병(M&A)이란 호재를 연이어 터뜨리고 있다.

게다가 엔화가 유로화에 대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엔화약세가 지속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 자금을 빌려 고수익 상품에 투자)가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도 뉴욕증시를 상승세로 이끌고 있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월가에서는 주변 여건을 감안하면 뉴욕증시가 조정을 거치더라도 단기간 내 끝내고 당분간 강세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렇지만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 게 가장 큰 변수다.

조정다운 조정을 받지 못한 만큼 상승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지표 악화 등 빌미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주택경기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 가능성 등이 변수로 도사리고 있다.

단기적으론 4일 발표될 4월 고용지표와 오는 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뉴욕증시의 고공행진 여부를 좌우할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