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자력법 규정은 원전의 주변 환경에 대한 방사선 배출량을 연간 1밀리시버트(mSv,1mSv=100밀리렘)로 제한하고 있다.

가슴 X선 사진을 서너 번 찍는 정도다.

그러나 국내 원전들이 자체 한도로 정한 방사선량은 그 20분의 1인 0.05mSv이고 실제로 관리되고 있는 수준은 이보다 훨씬 낮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자연 방사선량은 연간 2.4mSv이다.

대략 우주에서 오는 것 0.35,땅에서 배출되는 것 0.4,공기 중의 1.3,채소 과일 생선 육류 등 음식물로 나오는 것 0.35mSv다.

더구나 대도시 빌딩 숲의 콘크리트 건물이 뿜어내는 방사선량은 원전의 몇 배나 된다.

하지만 이처럼 숨쉬고 먹고 마시는 방사선을 문제삼는 환경론자는 없다.

그랬다간 '정신나갔다'는 소리만 듣기 십상이니까.

하이닉스 이천공장의 '구리공정' 논란도 원전 방사선을 둘러싼 시비만큼이나 답답하다.

물론 현행법상 '불가(不可)'인 건 맞다.

이천공장이 환경정책기본법과 수질환경보전법의 적용을 받아 19종의 유해물질 배출시설금지 규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공장 증설을 허가하려면 법을 두 개나 개정해야 할 판인데 그런 기대는 무리다.

그럼 구리는 무엇인가.

인류가 가장 먼저 이용한 금속 중 하나로 어느 것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이다. 전성(展性,얇게 펴지는 성질)과 연성(延性,가늘고 길게 늘어나는 성질)이 뛰어나 가공이 쉽고,열·전기전도율이 높아 전선의 주재료일 뿐 아니라,다양한 합금을 통해 화폐나 냄비 등 안 쓰이는 곳이 별로 없다.

동물 체내에서는 뼈나 헤모글로빈,적혈구 등을 생성하고 비타민이나 영양제에도 구리가 포함된다. 우리 주식인 쌀 보리 콩 등에 2~4ppm이,굴 같은 해산물에는 30ppm 정도나 들어있다.

물론 구리가 전혀 무해하지는 않다고 한다.

먹는 물에 3ppm 이상 오염되면 구토 설사 등 소화기장애가 일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우리나라가 먹는 물의 구리농도를 1ppm 이하로 정한 이유다.

중요한 것은 구리가 우리 주변 어디에나 널려있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자연계의 것과 인공적 부산물은 다르다는 게 환경론자들의 주장이지만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갖는지 알기 어렵다.

게다가 하이닉스 배출수는 허용치의 125분의 1인 0.008ppm까지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구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구리의 유해성 여부에 대한 검증이나,하이닉스가 배출량을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는지는 알 바 아니고 법이 있으니 안 된다는 논리만 있다.

그 덫에 애꿎게 하이닉스가 걸려든 것 뿐이다.

우리 규제가 늘 그렇다.

규제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는 그 합리성부터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시대가 어떻게 바뀌고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든 규제 자체에 얽매여 '무조건 안 된다'이다.

여기에 '관리'는 처음부터 없다.

"하이닉스의 구리는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팔당수질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하이닉스 증설을 허가하면 이게 다 무너진다.

수많은 유해물질 배출공장,골프장 등도 막지 못한다"는 환경부의 주장은 스스로의 '관리능력 부재(不在)'를 실토한 것이지만,구리를 핑계삼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이미 20년도 넘게 외쳐온 규제완화는 다 헛구호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