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의 I♥KOREA] 한국 山 등반 모임 "한국山 올라보니 한국人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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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애프터눈. "
기자가 다가가자 자신을 벨기에인이라고 소개한 '피터 디포터씨(시티은행 근무)'가 "처음 보는 얼굴"이라면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2번 출구의 지정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프랑스어,한국어 등이 뒤섞여 역 앞은 시장통처럼 떠들썩했다.
10분쯤 지나 20여명으로 불어난 회원들은 지체하지 않고 목표한 사패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이날 등산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울 인터내셔날 하이커스(Seoul International Hikers)' 회원들. 한국인 인솔자인 최현탁 경주대 교수(영문학)와 박정호 태능고 교사(영어)의 안내로 산행이 시작했다.
사패산 정상(552m)까지는 약 6km 정도로 2시간반가량 걸리는 코스. 사패산은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과 함께 서울 북부 5대 명산으로 꼽히는 곳이다. 정상에 서면 수락산 및 북한산과 서울 북쪽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좋다. 그리 높진 않지만 굴곡이 심하고 계곡이 맑아 등산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사패산'이란 이름은 선조 임금이 남달리 사랑했던 여섯 째 딸 정휘 옹주를 사가로 시집 보내면서 산을 하사한 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등산로는 회룡역 앞 도로를 건너 계곡의 좁은 길을 타고 시작됐다. 초입부터 맑은 개울을 건너 산으로 들어가는 길로 운치가 있었다. 전날 내린 봄비로 개울물은 불어나 콸콸 흘렀고 한껏 물을 머금은 나무들은 신록을 뽐냈다.
"나무들이 거목은 아니지만 빛깔이 너무 예뻐요. 계곡이 웅장하진 않아도 우아한 맛도 있고요."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남자 친구 칼 루드버그와 함께 온 미라벨 루프트(작가 지망생)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고국인 스웨덴 산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정감이 느껴지는 게 '한국의 산'이라고 감상을 쏟아냈다. 등산 모임에 처음 나온 러시아 출신의 나타샤(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도 "모스크바에는 산이 없는데 서울은 가까운 곳에 산이 많아 아름다운 도시"라고 거들었다.
초보자들도 섞여 있어 산행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일행은 봄산의 풍경을 맘껏 음미하면서 천천히 정상으로 향했다. 등산을 시작한 지 2시간반이 지난 3시50분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시야가 탁 트여 서울 북부 시가지와 주변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회원들은 온몸이 땀에 젖고 숨소리는 거칠었으나 정상에 올랐다는 만족감으로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정상의 바위에 둘러앉은 외국인들은 배낭에서 초콜릿,과일 등을 꺼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서 준비해 온 김밥 떡 등을 돌렸다.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신 회원들은 정상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국의 산을 알고 나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좋아졌어요. 산을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돼 가장 큰 추억으로 남습니다." 2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이달 중순 귀국을 앞둔 캐나다 출신의 제리 박스(컨설턴트)는 "산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건강하고 표정이 밝아 산을 다녀가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등산 예찬론을 폈다. 20여분 정도 숨을 돌린 뒤 하산을 시작한 일행은 6시께 회령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역 앞 식당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친 뒤 8시가 넘어 해산했다. S.I.H의 주말 등산은 식사 모임까지 해야 끝난다. 뒷풀이 시간이야말로 서로가 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서울 인터내셔날 하이커스는 지난해 7월 첫 모임이 시작된 후 단 한 주도 산행을 거르지 않고 있다. 간사역을 맡고 있는 최 교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크게 늘고 있는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려주고 한국 생활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주말 등산 모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규 회원은 150여 명 정도로 평균 20여 명 정도가 산행에 참여한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회원들도 있으며 홈페이지(www.seoulintl.net)를 보고 오는 회원들도 늘고 있다. 회원 자격에 특별한 제한은 없으며 회비도 없다. 매주 수요일쯤 공지되는 등산 정보를 참조해 토요일 오후 1시까지 정해진 장소로 모이기만 하면 된다. 등산에 필요한 먹을 것과 자신이 먹는 저녁 식비만 부담하면 된다. S.I.H의 모임을 계기로 한국산 마니아가 된 외국인들도 꽤 된다. 거의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주한 호주대사관의 이안 털랜드 경제 참사관은 "요즘은 따로 시간을 내 가족과 설악산 지리산 등을 찾아갈 정도로 한국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자랑했다.
등산 가이드 역할도 맡고 있는 박 교사는 "기회가 되는 대로 전국의 산은 물론 유적지 등 문화 탐방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외국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내국인들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
기자가 다가가자 자신을 벨기에인이라고 소개한 '피터 디포터씨(시티은행 근무)'가 "처음 보는 얼굴"이라면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2번 출구의 지정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프랑스어,한국어 등이 뒤섞여 역 앞은 시장통처럼 떠들썩했다.
10분쯤 지나 20여명으로 불어난 회원들은 지체하지 않고 목표한 사패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이날 등산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울 인터내셔날 하이커스(Seoul International Hikers)' 회원들. 한국인 인솔자인 최현탁 경주대 교수(영문학)와 박정호 태능고 교사(영어)의 안내로 산행이 시작했다.
사패산 정상(552m)까지는 약 6km 정도로 2시간반가량 걸리는 코스. 사패산은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과 함께 서울 북부 5대 명산으로 꼽히는 곳이다. 정상에 서면 수락산 및 북한산과 서울 북쪽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좋다. 그리 높진 않지만 굴곡이 심하고 계곡이 맑아 등산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사패산'이란 이름은 선조 임금이 남달리 사랑했던 여섯 째 딸 정휘 옹주를 사가로 시집 보내면서 산을 하사한 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등산로는 회룡역 앞 도로를 건너 계곡의 좁은 길을 타고 시작됐다. 초입부터 맑은 개울을 건너 산으로 들어가는 길로 운치가 있었다. 전날 내린 봄비로 개울물은 불어나 콸콸 흘렀고 한껏 물을 머금은 나무들은 신록을 뽐냈다.
"나무들이 거목은 아니지만 빛깔이 너무 예뻐요. 계곡이 웅장하진 않아도 우아한 맛도 있고요."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남자 친구 칼 루드버그와 함께 온 미라벨 루프트(작가 지망생)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고국인 스웨덴 산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정감이 느껴지는 게 '한국의 산'이라고 감상을 쏟아냈다. 등산 모임에 처음 나온 러시아 출신의 나타샤(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도 "모스크바에는 산이 없는데 서울은 가까운 곳에 산이 많아 아름다운 도시"라고 거들었다.
초보자들도 섞여 있어 산행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일행은 봄산의 풍경을 맘껏 음미하면서 천천히 정상으로 향했다. 등산을 시작한 지 2시간반이 지난 3시50분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시야가 탁 트여 서울 북부 시가지와 주변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회원들은 온몸이 땀에 젖고 숨소리는 거칠었으나 정상에 올랐다는 만족감으로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정상의 바위에 둘러앉은 외국인들은 배낭에서 초콜릿,과일 등을 꺼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서 준비해 온 김밥 떡 등을 돌렸다.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신 회원들은 정상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국의 산을 알고 나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좋아졌어요. 산을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돼 가장 큰 추억으로 남습니다." 2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이달 중순 귀국을 앞둔 캐나다 출신의 제리 박스(컨설턴트)는 "산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건강하고 표정이 밝아 산을 다녀가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등산 예찬론을 폈다. 20여분 정도 숨을 돌린 뒤 하산을 시작한 일행은 6시께 회령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역 앞 식당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친 뒤 8시가 넘어 해산했다. S.I.H의 주말 등산은 식사 모임까지 해야 끝난다. 뒷풀이 시간이야말로 서로가 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서울 인터내셔날 하이커스는 지난해 7월 첫 모임이 시작된 후 단 한 주도 산행을 거르지 않고 있다. 간사역을 맡고 있는 최 교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크게 늘고 있는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려주고 한국 생활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주말 등산 모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규 회원은 150여 명 정도로 평균 20여 명 정도가 산행에 참여한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회원들도 있으며 홈페이지(www.seoulintl.net)를 보고 오는 회원들도 늘고 있다. 회원 자격에 특별한 제한은 없으며 회비도 없다. 매주 수요일쯤 공지되는 등산 정보를 참조해 토요일 오후 1시까지 정해진 장소로 모이기만 하면 된다. 등산에 필요한 먹을 것과 자신이 먹는 저녁 식비만 부담하면 된다. S.I.H의 모임을 계기로 한국산 마니아가 된 외국인들도 꽤 된다. 거의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주한 호주대사관의 이안 털랜드 경제 참사관은 "요즘은 따로 시간을 내 가족과 설악산 지리산 등을 찾아갈 정도로 한국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자랑했다.
등산 가이드 역할도 맡고 있는 박 교사는 "기회가 되는 대로 전국의 산은 물론 유적지 등 문화 탐방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외국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내국인들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