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민항기 개발 및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한 것은 2005년 국내 처음으로(세계 12번째)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양산에 성공하면서 얻은 자신감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

KAI의 민항기 프로젝트는 유럽의 에어버스사나 미국의 보잉사가 독점해온 민항기 시장의 틈새를 공략, 세계 항공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내 항공산업 역사 다시 쓴다

KAI의 민항 완제기(완성된 항공기) 생산을 위한 도전은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다.

그동안 KAI는 보잉사나 에어버스사로부터 주문을 받아 민항기 일부 동체를 제작하면서 기술을 축적해왔다.

KAI는 2004년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미국 보잉사와 3억달러 규모의 B737 항공기 부분품(꼬리날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는 영국 판보로 에어쇼에서 에어버스사와 2010년까지 8000만달러 상당의 A321 항공기 동체 구조물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또 최근 사천 공장에 연면적 1만평 규모의 첨단 민항기 부품 조립공장을 준공하면서 민항 완제기 개발 및 생산을 위한 '워밍업'을 마쳤다.

정부와 KAI가 이런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민항기 개발 및 생산에 나서기로 한 것은 급성장하는 세계 중소형 민항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중국에서는 5년 내 민항기 수요가 300대 이상 늘어나는 등 연평균 수요 증가율이 10% 이상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는 향후 중국 관련 민항기 노선만 500여개가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KAI가 총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10~12인승용 민항기(1단계)와 90~120인승용 민항기(2단계)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중소형 민항기 시장을 겨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급성장하는 세계 자가용 비행기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KAI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향후 세계 민항기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어 상당 수준의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항기 시장 현황

민항기 시장은 규모에 따라 세분화돼 있다.

150~550인승에서는 보잉과 에어버스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100인승급에서는 브라질 엠브레어와 캐나다 봄바디어사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100인승 민항기를 개발해 자국 내에서 운항하고 있다.

10인승급은 프로펠러기와 제트기로 나뉘는데 이 시장에서도 전문화된 업체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그러나 10여년 전 수십년 역사의 네덜란드 중형기 업체인 포커사가 파산한 사례에서 보듯이 민항기 시장은 경쟁이 치열해 수성이나 진입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본도 100인승급 이상의 민항기를 자체 개발해 생산에 들어갔다가 사업을 접기도 했다.

국내에선 1988년 대한항공 주도로 5인승 단발 프로펠러기 '창공91' 개발에 착수,1991년 11월 처녀비행에 성공했으나 시장개척을 하지 못해 양산에 실패했다.

1994년에는 한국과 중국이 똑같은 지분으로 10억 달러를 투자, 100인승 항공기를 양산하기로 합의했지만 최종 조립라인을 어디에 두느냐는 문제로 갈등을 빚어 협의가 결렬되기도 했다.

송대섭/장창민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