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는 약속의 연속인 것 같다.

부모와 자식,친구,거래 당사자들과의 수 많은 약속으로 인간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약속을 하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말이 나온 것은 약속을 실천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게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가급적 맹세를 삼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약속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약속은 아마도 자신과의 약속일 게다.

상대방이 없기에 쉽게 약속하고 곧잘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대수롭지 않게 용서해 버리곤 한다.

"약속과 계란은 깨지기 쉽다"고 하지만 영국 속담처럼 '약속은 부채'로 남게 마련이다.

결국 약속에 부담이 없다 해서 이를 팽개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지키기 어려운 자신과의 약속을 서울대생들이 실천하겠다고 나섰다.

정치인들이 선거공약 이행을 다짐하는 '매니페스토'처럼 생활 속에서의 매니페스토 운동인 셈이다.

학생들은 "나는 평생 무엇을 하겠다 또는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적어 '약속의 나무'라는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자신과의 약속을 통해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자는 취지여서인지 "모든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세제는 사용하지 않겠다" "리포트를 베끼지 않겠다"는 등 거창한 약속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약속은 자기구속"이라고 했다.

설사 약속불이행에 따른 어떤 책임은 지지 않는다 해도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짐으로 남아 있게 된다는 얘기다.

"행동은 약속할 수 있지만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고 치부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일도 경계할 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들이 약속을 위협하는 복병이 될 것이고 보면,이러저런 약속들이 얼마큼 신뢰를 가질지 불안하기만 하다.

자신이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면서 또 한편으론 나의 약속이 누군가에게 믿음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