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盈敎 < 동국대 총장 youngfive@dongguk.edu >

우리 이름이 삶의 좌우명(座右銘)과 같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항해에 나침반이 필요하듯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좌우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좌우명은 대개가 성인이 된 후 자신이 선택하거나 만들게 된다.

이름은 출생과 동시에 각자의 의지와 관계 없이 지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름이 좌우명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불교에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법명은 좌우명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나는 '무착(無着)'이란 법명을 갖고 있다.

'집착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형식 또는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중시하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은 원하는 것과 반드시 필요한 것의 구분보다도 그저 많이 갖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려는 심리 기제(mechanism)를 갖고 있다.

무착은 필요 이상의 불필요한 것을 벗어 버리는 무소유의 의미도 있다.

무착이란 법명은 내 삶에 좌우명 역할을 한다.

한 조직을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조직의 구조를 바꾸는 혁신을 수행할 때 첫 번째 과제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며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다.

그때마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혁신 과제의 본질을 생각하면 여타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이 주는 또 다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착의 정신이 이를 도와준다.

내가 대학 총장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만난 한 장학재단의 이사장은 신독(愼獨)이란 좌우명을 마음에 새긴다고 한다.

'신독'은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는 남을 속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못한다.

이 분의 좌우명이 그 분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본다.

이름의 본질이 그 대상의 모습과 분리되지 않고 그 주체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한다면 나는 그 분을 '신독 선생'으로 부르고 싶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전에는 가정의 달에 각 가정이 가훈을 갖는 사회 운동도 있었다.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그리고 부부간의 관계를 가족이란 공동체 내로 묶어 주는 역할을 가훈이 한다면,개인의 좌우명은 자신이 경계해야 하는 것 또는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5월이 되자 나무들도 푸름을 더해가며 자기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인생의 긴 여정에서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제대로 살기 위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돕기 위해 신록의 계절에 좌우명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좌우명으로 내가 불린다면 내 정체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